토스카니니(1867~1957)는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명장이다.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파르마 국립음악원에 장학생으로 선발된다. 첼로와 피아노 그리고 작곡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토스카니니가 세계적인 지휘자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세가 되던 1886년 6월 30일 로스 오페라단 오케스트라의 브라질 공연 때다. 아이다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 도중에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갈등을 빚고 관객들의 야유가 터져 나오자 돌연 지휘를 중단하고 퇴장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공연이 무산될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단원들은 이구동성으로 19세 청년 토스카니니를 지휘자로 추천했다. 이유는 토스카니니가 단원들 중 유일하게 아이다 악보 전편을 외운 유일한 암보자(暗譜者)였기 때문이다. 그는 비상한 기억력으로 어떤 악보든 두세 번 보면 악보가 저장되는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토스카니니의 명성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영향의 불안’이란 유명한 저작물을 남긴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였던 헤롤드 블룸(1930~2019)도 토스카니니처럼 어떤 문학작품이든 한번 보면 작품이 통째로 스캔이 되는 천재였다. 또 세계적인 기호학자이자 작가였던 움베르토 에코 역시 이탈리아 국립중앙도서관의 장서 위치를 통째로 꿰고 있을 정도로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이런 천재과(科)에 속한 토스카니니의 지휘 원칙은 악보대로 충실하게 연주하는 것과 철저한 리허설이었다. 이 같은 원칙은 평생 동안 지켜졌다. 푸치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투란도트’는 미완의 걸작 오페라였다. 푸치니가 남겨둔 부분은 그의 제자들이 채워 작품을 완성시켰지만, 토스카니니는 항상 푸치니가 작곡한 부분까지만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상목 기재부 부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은 경제통으로 경제학 박사에 학계와 정부 부처 요직을 두루 거친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 즉 전문기술관료다. 그에게 선출직 공무원이나 정치인들 같은 리더십이나 정치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민들이 바라는 바나 최 대행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딱 하나, 토스카니니처럼 모든 것을 법과 원칙과 상식대로 처리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