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정치사 ‘내전’ 같은 현실 체감하게 해

대선 이후 앙숙관계 이어온 윤석열과 이재명

극한대립 속 정치적 행위, 생존싸움으로 변질

개헌이나 하야로 승자독식·증오 정치 끝내야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지난주, ‘내란죄 우두머리’로 지목된 윤석열 대통령 관저에서 공수처와 경호처가 대치하는 아찔한 장면이 벌어졌다. 엊그제(7일) 체포영장이 재발부되면서 또다시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21세기에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소추, 체포 작전까지 이어지는 굴곡진 정치사는 국민에게 또 한 번 ‘내전’ 같은 현실을 체감하게 하고 있다. 기자도 현직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의결을 세번째로 목도하게 된 현실이 믿기지 않을뿐이다.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5분, 기자 역시 여느 국민처럼 일정을 마치고 귀가한 후였다. 비상계엄을 선언하는 윤 대통령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순간 딥페이크 영상인가 싶어 눈을 의심했지만, 곧 가짜뉴스가 아님을 확인하자 ‘이거 물귀신 작전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전날 야당이 감사원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포함한 검찰 지휘부 3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체코 원전 지원 예산과 동해 가스전 시추 예산을 대폭 삭감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더는 밀릴 수 없다는 고립무원의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내란죄와 친위쿠데타적 결정이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오판이었는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였는지는 여전히 모든 국민의 의문으로 남아 있다. 비상계엄과 몇 차례의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2년 반 동안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고,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178회에 달하는 대통령 퇴진·탄핵 집회가 임기 초부터 열렸고,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기 위해 수십 명의 정부 공직자를 탄핵하고 위헌적 특검도 27번이나 발의하며 정치 선동 공세를 가했다”고 피를 토하듯 말했다. 아마도 이러한 태도는 탄핵 심판 과정에서 헌법재판소에 나와 반복하지 않을까 싶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윤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대선 이후 여전히 ‘해원’을 풀지 못하고 앙숙 관계를 이어왔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협력보다는 정부를 흔드는 데 집중했고, 윤 대통령은 이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정치적 미숙함을 드러냈다. 야당이 윤 정부를 무능하게 만들어 정권을 되찾으려는 목표에 몰두했다면, 윤 대통령 또한 이 대표를 범죄인 취급하며 교만했다. 두 사람의 대선 득표율 차이는 0.73%로 단 24만7천표 차이에 불과했다. 승자독식의 정치 현실에서 이긴 윤 대통령은 모든 권력을 쥐었고, 진 이 대표는 야당 당수 취급도 못받는 설움과 사법 리스크까지 감내해야 했다. 윤 대통령은 원칙과 법치를 강조하며 단호한 태도로 무시했고, 이 대표는 독립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스타일로 약을 올리며 충돌이 반복되었다.

‘화내는 사람이 진다’는 말처럼, 결국 윤 대통령이 먼저 폭발했지만, 두 사람에겐 오로지 검투사의 살기만 느껴졌을 뿐이다. 지금도 이 대표는 자신의 결심 공판 전에 윤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끊겠다고 결심했을 가능성이 크고, 윤 대통령은 탄핵의 여파 속에서도 6개월 안에 이 대표와 동반 몰락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의 관계를 ‘증오를 넘어선 야수의 정치’라 평하며, 현세의 ‘오징어 게임’에 비유하기도 했다. 극한의 대립 속에 모든 정치적 행위를 생존을 건 싸움으로 변질시킨 건 두 사람 간의 ‘영웅 놀이’는 아닐까. 두 사람의 악연으로 정치권에 드리워진 화(火)가 너무 크다는 비판은 지울 수 없다.

광화문, 한남동, 여의도로 상징되는 분열의 정치를 바로잡을 노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진영 정치의 악순환을 끊을 대안이 필요하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시민 사회가 힘을 모아 개헌이나 질서 있는 하야를 통해 승자독식과 증오 정치를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주인공을 향해 “영웅 놀이 재밌더냐”는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마지막 대사와 그 뒤를 잇는 총성(퐝)이 귀속에 맴돈다.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