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클러가 불길 막아… 부천 호텔참사와 차이점

유독가스 가둔 방화문… 수원골든프라자 다수 부상

옥상으로 시민 대피… 대피 실패한 백두한양아파트

지난 3일 불이 난 분당 야탑동의 한 건물.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지난 3일 불이 난 분당 야탑동의 한 건물.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지난 7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의 한 8층 상가건물을 찾았습니다. 이 건물은 불과 나흘 전 큰 불이 났던 곳입니다.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듯 건물 외벽은 검게 그을려있었습니다. 매캐한 냄새는 여전히 코를 찔렀습니다.

화재 당시를 복기해보면 이렇습니다. 지난 3일 오후 4시40분께 건물 1층 식당에서 불이 났고, 삽시간에 건물 전체가 검은 연기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건물에 있던 300여명 시민들이 대피했습니다.

다행인 건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돌이켜보면 여러 시민이 이용 중이던 건물에서 불이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죠.

야탑동 화재 건물은 어떤 차이로 인해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우리 동네 각종 화재 사고와 야탑동 화재를 비교 분석했습니다.

야탑동 화재, 이전 사고와 무엇이 달랐나

야탑동 상가에 큰 규모의 불이 발생했지만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건 스프링클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스프링클러가 없는 경기도내 한 노후숙박시설. /경인일보DB
야탑동 상가에 큰 규모의 불이 발생했지만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건 스프링클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은 스프링클러가 없는 경기도내 한 노후숙박시설. /경인일보DB

소방당국은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이유로 건물 내 초기 진화 시설이 정상 작동한 것을 가장 먼저 꼽습니다. 스프링클러가 정상작동했고 각 층마다 방화문이 닫혀있어 유독가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화재 당시 불이 난 1층, 2층의 스프링클러가 작동했습니다. 스프링클러가 뿜어낸 물로 인해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죠.

반면 지난해 8월22일 19명의 사상자를 낸 부천 호텔 참사 때는 객실 등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를 키웠습니다.

'부천 호텔 화재' 스프링클러 없지만 '양호'… 소방점검 소용 없었다

'부천 호텔 화재' 스프링클러 없지만 '양호'… 소방점검 소용 없었다

."지난 22일 오후 7시37분께 부천시 원미구의 한 호텔에서 발생해 7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 사고 역시 사실상 예고된 인재였던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날 퇴근 후 귀가하며 인근을 지나던 김모 씨가 화재 현장을 목격했을 땐 이미 불꽃과 유독가스가 발화 지점인 건물 7층을 가득 메운 상태였던 터라 투숙객들은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구축 건물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때마다 그랬듯, 이번 부천 호텔건물 화재 역시 객실 내 기본적인 스프링클러조차 설치돼 있지 않은 상태로 파악돼 사실상 대형 인명피해 우려를 안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이날 화재 현장 브리핑에 나선 부천소방서 관계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면서도 "(사고 호텔 건물의)2003년 건축 완공 당시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관련법 개정에 따라 지난 2017년부터 6층 이상 신축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소급 적용은 되지 않아 이번 사고 건물까지 반영되지는 않았다.현재까지 소방당국이 발화 요인으로 추정하는 객실 내 벽걸이 에어컨에서의 화재가 에어컨 아래 놓여 있던 침대 매트리스를 통해 삽시간에 커지는 동안 그 어떤 소방시설도 불의 확산을 막지 못한 것이다.불과 수개월 전 이뤄진 호텔 자체 소방점검과 소방서 차원의 안전진단도 이번 참사를 막는 데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4월 민간 소방시설관리업체를 통해 진행된 해당 호텔 건물 내 각종 소방시설에 대한 자체 점검 결과는 '양호'였다. 아무런 지적 사항이 나오지 않은 이 같은 결과가 부천소방서에 통보되기도 했다.이로부터 2개월 전 부천소방서가 직접 해당 건물을 겨울철 화재 대비 목적으로 안전진
https://www.kyeongin.com/article/1706265
2024년 8월 26일 자 7면에 보도된 ‘부천 호텔 화재’
2024년 8월 26일 자 7면에 보도된 ‘부천 호텔 화재’

불이 난 호텔은 2003년에 완공됐는데, 관련법 개정 전 준공 승인이 나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겁니다. 정부는 2017년부터 6층 이상 신축 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거든요.

야탑동 화재는 방화문이 제역할을 한 것도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영향을 줬습니다. 화재 당시 건물 각층은 방화문이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소방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건물 복도에 연기가 많이 차있지 않아서 옥상이나 지하 등 적절한 장소로 대피를 유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소방대원들이 비교적 연기가 잦아들었을때 신속하게 시민들을 구조했습니다.”

지난 3일 불이 난 분당 야탑동의 한 건물. 지난 7일 찾은 이곳에선 건물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지난 3일 불이 난 분당 야탑동의 한 건물. 지난 7일 찾은 이곳에선 건물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실제로 지난 7일 찾은 건물의 내부 벽면은 그을린 흔적이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화재 당시 유독가스가 내부로 많이 유입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이와달리 이전에는 방화문이 열려있어 인명 피해를 키운 사례도 적지 않게 있었죠. 지난 2018년 60여명이 부상을 입은 수원골든프라자 화재 때는 유독가스를 흡입한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고요.

국내 대형참사로 꼽히는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때도 방화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지난 2017년 4명이 사망하고 47명의 부상자를 낸 이 사고는 조사 결과 건물 관리인 등이 스크링클러를 비롯한 소방방재시설을 사실상 평소에도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 심리를 맡은 판사가 “안전불감증이 부른 전형적인 인재”라고 지적할 정도였으니까요.

2017년 2월 6일 자 1면에 보도된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2017년 2월 6일 자 1면에 보도된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2018년 12월 3일 자 7면에 보도된 수원 골든프라자 화재.

2018년 12월 3일 자 7면에 보도된 수원 골든프라자 화재.

지난 3일 화재로 분당 야탑동의 한 건물 곳곳이 불길에 휩싸였다. 사진은 불이 났던 건물 내부 모습.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지난 3일 화재로 분당 야탑동의 한 건물 곳곳이 불길에 휩싸였다. 사진은 불이 났던 건물 내부 모습.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야탑동 화재 당시 옥상으로 향하는 문이 열려있고, 적치물이 없었던 점도 시민들의 신속한 대피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옥상문은 소방법에 따라 상시 개방해야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관리 편의 등을 이유로 옥상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피로에 옥상문으로 향하는 명확한 표시가 없어 혼란을 키운 사례도 있고요. 지난 2020년 군포 백두한양아파트 화재 때 인명 피해가 발생했는데요. 당시 사상자 11명 중 일부는 권상기실 문 앞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권상기실은 엘리베이터 설비를 둔 곳으로, 이곳을 옥상 대피장소로 착각한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을 추론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난 3일 불이 났던 분당 야탑동의 건물 내부 벽면. 화재피해주민 지원센터와 복구 공사 일정을 안내하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
지난 3일 불이 났던 분당 야탑동의 건물 내부 벽면. 화재피해주민 지원센터와 복구 공사 일정을 안내하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

일련의 소방방재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며 신속한 경보, 시민들의 대피로 이어졌습니다.김흥복 분당소방서 화재예방과장은 이번 화재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방시설의 신속한 경보와 소방당 지시에 따라 움직인 시민들, 신속한 진화 작업 등 삼박자가 갖춰졌기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3일 불이 났던 분당 야탑동의 8층 건물. 내부는 외벽과 달리 검게 그을린 흔적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지난 3일 불이 났던 분당 야탑동의 8층 건물. 내부는 외벽과 달리 검게 그을린 흔적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2024.1.7 /이시은기자see@kyeongin.com

전문가들은 화재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안전불감증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여러 안전 장치를 갖추고 이를 제대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용재 경민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이렇게 짚어냈습니다. “안전이라는 것은 거대한 시스템이나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게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게 기본적인 요소가 잘 갖춰지는 것입니다. 야탑동 화재와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여러 화재 사건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는데요. 초기 소화 설비나 방화문의 닫힘 여부, 화재감지기의 정상 작동 등에 의해 피해 규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죠. 법에서 명시한 소방방재시설이 갖춰지고 이를 제대로 관리하는 게 안전의 출발점입니다.”

시민들도 화재 예방을 위해 일상 속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이영주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관리인이 평소 건물 내 소방방재시설을 잘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시민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복합상가에서는 시민들이나 업주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화문을 열어두거나 옥상문을 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관리인 입장에서 한계가 있는거죠. 관리인 의지 못지 않게 건물 관계인과 시민들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합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