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비상조치권·국회해산권을 폐지하며 국회 국정감사권을 부활하는 내용 등을 뼈대로 한 1987년 9차 개헌이 통과된 뒤 대한민국 헌법은 38년 간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거치며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인일보는 황우여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이시종 대한민국헌정회 개헌특위 간사(전 충북도지사), 박광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연구센터장, 최준영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등 4인에게 개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들은 의원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국회 양원제, 지방분권 등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개헌 시기와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전문가 4인이 생각하는 개헌에 대해 들어본다.

대통령-민주당 누구도 책임 안져

총선 한번에 행정·입법부 다 가져

진짜 책임지고 일하는 상황 돼야

최준영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견제·균형이 아니라 이긴 쪽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영국식 내각제가 개헌의 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인하대 제공
최준영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견제·균형이 아니라 이긴 쪽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영국식 내각제가 개헌의 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인하대 제공

‘어떻게 하면 여야 싸움을 멈추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개헌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개헌 논의가 대통령에 집중돼 있는 권한을 나누는 데 몰리면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얘기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선포라는 비정상적 방법을 동원한 상황을 봐야 한다.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협조하지 않았다. 탄핵·특검 등으로 정상적 국정 운영이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 권한 약화가 아니라 여·야 정치적 갈등을 극복할 개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국 예를 들자. 여야 간 대화·타협이 존재했다. 민주당 보수파와 공화당이 서로 정책적 연합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수주의 연합 ‘컨저베이티브 코올리션’이다. 쟁점이 있어도 상호 협조하고 때로는 당파적으로 조율했다. 대통령이 상대 당 의원을 만나 설득했다. 그런데 이제 공화당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민주당은 굉장히 진보적으로 바뀌며 극단적 대립만 남았다.

우리를 보자. 여야가 서로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싸운다. 이런 것을 피하며 대화하고 타협하는 정치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쪽으로 권력구조 개편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문제가 똑같이 발생한다.

영국과 같은 내각제가 답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양대 정당이 있다면,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쪽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다. 견제·균형이 아니라 이긴 쪽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다. ‘책임 정당 정부’(responsible party government)를 구성하는 것이다.

대통령제에서 견제·균형이 작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윤 대통령 입장에서 “민주당이 책임져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책임지라고 한다.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나라가 어떻게 되든 책임 떠넘기기를 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만 차지하려 싸운다. 민주당이 여당일 때 감히 국회 통과를 생각도 하지 않던 법안을, 야당이 되니 통과시키고 있다. 이러한 것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 견제·균형 없이 한 쪽이 모든 것을 다 책임지는 제도, 내각제를 만들어 놓으면 진짜 책임지고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된다.

내각제가 방향이다. 한 번의 총선으로 한 정당이 행정부·입법부 권력을 갖는 것이다. 그 정당이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해나가는 것이다. 단점도 있다. 사생결단식 총선이 치러지고, 총리가 신임을 잃으면 내각이 붕괴된다. 국회 해산권도 주어진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당분간 대화,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전제로 내각제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 분노하고 싸울 때가 아니라 숙의를 할 때다. 모두가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

정리/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