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가 신설됐다. 박스컵(Park’s cup)대회다. 개최국 한국은 1회 대회에서 버마와 공동 우승했다. 버마는 2·3회 대회 준결승에서 한국을 주저앉히고 3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연속 3위에 그친 한국대표팀은 ‘박정희컵’을 뺏긴 불경죄(?)에 고개를 숙였다. 1983년 버마를 국빈방문 중인 전두환 대통령을 노린 북한의 아웅산 묘소 테러가 발생했다. 버마는 1989년 미얀마로 개명했지만, 한국 6070세대엔 미얀마보다 버마가 강렬하다.

베트남, 태국보다 덜해도 미얀마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여행 유튜버들은 미얀마의 정치 불안, 열악한 관광 인프라, 초현실적인 저물가 등을 소재로 동영상을 쏟아낸다. 한국인은 언제든 미얀마를 방문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체류 미얀마 사람들은 미얀마 입국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미얀마는 1962년 군사반란 이후 지금까지 군부가 독재 중이다. 1948년 독립한 미얀마는 극심한 정당 대립, 민족 갈등을 겪다가 군부정권에 떨어졌다. 8888(1988년 8월 8일) 민주항쟁으로 찾은 버마의 봄은 군부 쿠데타로 좌절됐다. 2015년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야당이 승리했지만 군부 권력과 동거하다가, 2021년에 군부가 쿠데타로 총선 결과를 뒤엎고 다시 권력을 독점했다. 군부에 상·하원 의석 25%와 국방·치안권을 보장한 반민주적 헌법이 빚어낸 참사다.

민주화 세력은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를 구성해 군부정권에 맞섰고, 많은 미얀마 민주인사들이 군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인천 부평구는 NUG 한국대표부가 설치된 미얀마 민주화의 핵심 해외거점이다. 미얀마 군부정권이 이들을 겨냥해 여권을 취소하고 있다. 불법체류자로 만들어 본국으로 송환시키려는 교묘한 탄압이다.

경인일보가 이들의 급박한 처지를 연속 보도했다. 법무부가 경인일보 질문에 ‘불법 체류자라도 미얀마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유지하겠다’고 회신했다. 군사정변 역사에 갇혔던 대한민국의 이심전심이다. NUG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에 동참했단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미얀마인들은 망명국 민주주의 위기에도 가슴이 철렁했던 모양이다. 군부가 미얀마로 바꾼 국명을, 민주화 진영은 버마라 고집한단다. 미얀마 망명객들이 버마 국민으로 귀국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빈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