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미는 밥을 지으면 함치르르 윤기가 나고 찰기가 있다. 비옥한 충적토양과 풍부한 물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조선의 진상미로서 명성은 이미 자자하다. 백자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이천·여주의 자채쌀은 까다로운 왕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1979년 유신체제가 붕괴하자 통일벼 정부미 대신 일반미가 주목받았다. 수라상에 진상됐던 경기미는 국내 쌀 시장의 절대강자로 식탁 위에 군림했다. 1983년에는 일반미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경기미 가격이 급등하며 ‘일반미 파동’까지 일었다. 1980년대 중반 일부 양곡상이 타 지역에서 생산한 쌀을 싸게 매입해 ‘경기특미’로 속였다. 2012년에는 3년 묵은 나라미와 햅쌀을 섞어 만든 ‘가짜 경기미’ 2천t 규모 10만포대가 적발됐다. 경기미는 나라밖에서도 홍역을 치렀다. 미국에서 칼로스쌀 95%와 국내산 5%를 섞어 한글 브랜드를 붙여 팔았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쌀은 이천쌀로 둔갑했다. 지리적표시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유럽에서조차 우리 쌀은 보호받지 못했다.
보다 못한 경기도는 특단의 카드를 꺼냈다. 2002년 4월 신고 포상금제를 도입했다. 효과는 빨랐다. 그해 10월 시중에 유통된 92t을 적발한 농산물품질관리원 직원 2명에게 총 1천만원을 지급했다. 2021년에는 최대 500만원 포상 기준을 한 포대 이상으로 대폭 낮췄다.
임금님표 이천쌀, 대왕님표 여주쌀, 화성 수향미·햇살드리, 평택 슈퍼오닝, 김포 금쌀, 안성마춤쌀, 연천 남토북수 반딧불이, 해솔촌 포천쌀, 물맑은 양평쌀, 용인백옥쌀 등 지자체마다 쌀 브랜드가 넘쳐난다. 여주시는 2017년 ‘진상벼’의 특허권을 획득하고 불법 재배·유통에 강력 대응하고 있다.
화성시도 2021년 ‘수향미’ 전용실시권을 취득했다. 3년 유예를 거쳐 지난해부터 2032년까지 관내 재배만 가능하다. ‘수향미’는 누룽지 향과 쫀득한 찰기가 일품이다. 수향미 품종인 골든퀸3호는 지난해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전국구 인기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지난 20일 농업인 신년회에서 ‘수향미’ 지킴이를 자처했다. 타 지역에서 수향미를 무단 재배하고 있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경기도 시·군들의 쌀 브랜드는 지역의 정체성이다. 쌀이 흔해졌다고 농부가 흘린 땀의 가치까지 떨어져서는 안 된다. 땅의 정직함 그대로 지역 쌀의 자존심도 지켜져야 한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