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디지털교과서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 /경인일보DB
어린이가 디지털교과서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 /경인일보DB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방송법 개정안,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 그리고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최 권한대행은 지난 21일 국무회의에서 이들 법안에 대해 국회의 재의를 요구하면서 각각의 사유를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건 ‘AI 디지털 교과서’의 공식 채택을 배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한 내용이다. 국회가 이 법을 개정한 취지는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짚은 최 권한대행은 법 개정안이 이대로 시행되면 우리 학생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와 미래 준비,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때마침 일본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정식 교과서로 규정해 각 지역 교육위원회가 종이 교과서와 디지털 교과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 역시 현행 학교교육법은 디지털 교과서를 종이 교과서와 같은 정식 교과서가 아니라 대체 교재로 규정하고 있다. 엊그제 정부가 재의요구한 우리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유사한 내용이다. 차이는 디지털 교과서를 이미 대체 교재로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일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식 교과서로 채택하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우리는 정식 교과서로 채택하려 했다가 교육자료로 물러섰다는 사실이다. 앞서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가 도리어 뒷걸음질 치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늦춰지고 있는 이유는 일부 교원 및 교육단체들이 디지털 기기 의존성 심화와 교육격차 확대 등을 이유로 강력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니나 자칫 노동계의 반발 때문에 반도체산업특별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전 세계 반도체산업이 기업 간 경쟁에서 국가대항전으로 확대·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 조항을 둘러싼 이견으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현 상황과 닮은꼴이다.

반도체산업특별법이 현세대의 생존을 도모하는 길이라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미래세대의 생존을 담보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당장 미국 대통령 자리에 다시 오른 트럼프도 AI를 무한강조하는 판국이다. 자칫 우리만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