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바둑 전쟁이 뜨겁다. 지난달 23일 메이저 세계기전인 LG배 결승전에서 사달이 났다. 결승 3국에서 사석(死石) 규정 위반으로 벌점을 받은 중국의 커제(柯洁) 9단이 대국을 포기해 한국의 변상일 9단이 기권승으로 우승배를 차지한 것이다. 결승 2국에서 같은 규정 위반으로 반칙패한 커제는 재대국을 요구하며 거칠게 항의했다.
바둑 승패를 가리는 계가는 공인된 국제 규정이 없다. 사석을 계가에 쓰는 한국과 일본 바둑에선 사석의 숫자가 형세 판단에 중요하다. 반상 위의 살아있는 돌만 헤아려 계가하는 중국에선 기사들이 사석을 바둑판 주변에 뿌려놓기 일쑤고, 손에 쥐거나 상대 바둑통에 넣기도 한다. 사석 숫자로 형세를 가늠하는 한국 기사에겐 분통 터질 일이다. 한국 기원이 지난해 11월 ‘사석을 바둑알통 뚜껑에 보관’하도록 경기규칙을 바꾸었다. 한국 기전에선 한국식 바둑을 두어야 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대국 중 한 번 어기면 2집 공제 벌칙, 두 번 어기면 반칙패다.
커제와 중국바둑계 전체가 한국을 성토한다. 커제는 자기가 실제 우승자라며, 세계 메이저 기전 9승자로 자처한다. 중국바둑협회는 아예 중국 기사들의 한국 기전 불참과 한국 기사의 중국 기전 출전 불허를 선언했다. 기가 막히다. 한국기원은 개정 규칙을 중국협회와 선수들에게 고지했다. 커제와 중국바둑계는 주최국 경기 규정과 바둑 문화를 인정해온 국제 관행을 존중해야 맞다. 그래야 자신들도 존중받을 수 있다. 한국식 계가법으로 승리한 한국 기사들이 중국식 계가법에 따라 패배를 인정한 중국 기전 사례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커제와 중국바둑계의 과도한 분노의 배경에 중화 우월주의가 어른거린다.
사석을 놓고 벌어진 한·중 바둑 분쟁이 한반도 외교 형세와 교묘하게 유사하다.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의 가치보다 자국 이익을 앞세우고, 중국은 이기적 중화주의로 한국을 변방국으로 취급한다. 대륙간핵탄도미사일이라는 게임체인저를 손에 쥔 북한의 외교 1순위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커제와 중국바둑계가 한국 바둑판을 걷어찼듯이, 한국의 번영을 받쳐준 세계질서와 한반도 형세를 강대국들이 억지와 횡포로 무너뜨리고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세계 정치·외교·안보 바둑판에서 실리를 챙길 포석에 집중해야 한다. 한눈 팔면 사석(死石·죽은 돌)이나 사석(捨石·버린 돌)으로 바둑판에서 떨어진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