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 ‘금강경’과 성경 ‘전도서’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바로 무상(無常)의 가르침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꿈같고 환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다는 ‘금강경’의 사구게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서’ 1~2장의 말씀이 그렇다.
이 같은 무상의 철학은 17세기 미술의 핵심 주제이자 화제(題)였다.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행하던 바니타스 정물화가 대표적이다. 바니타스(vanitas)는 ‘허무’, ‘무상’의 뜻을 가진 라틴어로 영어 명사 허영심(vanity)과 형용사 헛된(vain)의 어원이기도 하다. 바니타스 정물화를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으로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안토니오 드 페레다의 ‘바니타스 알레고리’, 그리고 페테르 클라스의 ‘해골과 깃털이 있는 정물’ 등이다. ‘대사들’의 그림 중앙에 얼핏 식별하기 어려운 흰색 얼룩의 그림이 있는데 이는 사람의 해골을 그린 것이며, ‘바니타스 알레고리’는 지구의를 들고 있는 천사 앞에 나뒹구는 해골들이 있고, ‘해골과 깃털이 있는 정물’은 제목 그대로 책 위에 해골이 있고 그 앞에 필기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어 글쓰기와 불세출의 고전도 무상하고 헛되다는 것을 암시한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맥베스’는 무상 철학의 절정이다. 스코틀랜드 왕족이자 글라미스의 영주인 맥베스는 마녀의 예언을 듣고 왕 던컨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욕망과 탐욕에 눈이 멀어 국왕을 살해하고 권력을 잡은 맥베스도 비참하게 죽음을 맞게 된다. 죄책감과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비극적 결말을 직감한 맥베스는 5막 5장에서 다음 같은 대사를 읊는다. “꺼져라, 단명하는 촛불이여/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지만/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불행한 배우일 뿐/인생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 같아/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결국 아무 의미도 없도다.”
지난 12월 27일 시작된 헌재의 탄핵 심리가 벌써 7차례나 진행됐다. 최고의 권력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피청구인의 자리에서 자기변호에 급급한 모습에서 문득 권력의 무상함이 엿보인다. 어떤 권력이든 절대로 영원하지 않다. 영욕에 가득 찬 맥베스의 삶이 보여주듯 권력을 탐하는 잠재적 차기 대권주자들도 이 무상의 철학을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