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종전협상이 개시됐다. 그런데 협상장에 우크라이나가 없다. 1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협상 테이블에서 대면한 당사자는 미국과 러시아였다. 미국은 러시아와 교전 당사국이 아니다. 뒤에서 군비 지원만 했다. 3년 전쟁을 홀로 수행하며 수십만명의 국민을 희생시킨 우크라이나는 환장할 노릇이다.

트럼프는 러·우 전쟁 종결을 미국의 이익으로 생각한다. 미국만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우크라이나의 종전 조건은 귓등으로 흘린다. 러시아는 협상에서 대러 국제제재 해제, 우크라이나 점령지 영토 유지를 요청했고 미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미군 주둔, 나토 가입 등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요구엔 고개를 가로젓는다.

오히려 군비 제공 대가로 5천억 달러(720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희토류 자원을 요구했다.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자원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당당하다. 러시아가 미국의 자원 식민지를 침공할 리 없으니 완벽한 안전보장이라고 억지를 부린다. 러시아를 공동의 주적으로 삼았던 EU는 미국의 변심에 발칵 뒤집어졌지만, 27개 회원국의 중구난방으로 대책이 없다. 우크라이나만 신국제질서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다.

1953년 6·25 전쟁 정전협정 조인 때 UN군 사령관인 미육군 대장이 대한민국을 대신했다. 전쟁을 UN군에 위임했고, 미국이 전쟁 지휘국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도 대한민국 안전보장 없이 정전협상이 진행됐다. 미국은 안보동맹으로 한국을 설득했지만, 한국은 정전 후 미국의 약속 이행을 의심했다. 단독 북진 의지의 증거로 반공포로를 석방한 이승만 대통령의 무력시위에 골치 아파진 미국은 정전협정 직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공표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가장 확실한 종전 조건은 72년 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 모델일 것이다. 하지만 국제질서가 변했고, 미국도 그때의 미국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선전했지만 최악의 미국, 아니 트럼프를 만난 불운으로 국가적 수치와 위기를 감내할 처지에 몰렸다.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이라면 동맹과 적을 구분하지 않는다. 상대의 약점으로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 잔인한 상재(商才)로 부유한 동맹국에 침을 흘린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이익에 기여한 한미동맹을 안보·경제비용 청구 용도로 격하한다. 우크라이나를 동정할 여유가 없다. 트럼프는 우리에게도 위험하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