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는 17~18세기에 출현한 조선백자다. 통상 둥근 모양에 높이 40㎝를 넘으면 달항아리로 분류한다. 은은한 유백색에 유려한 곡선, 꾸밈없는 소박한 모습으로 고려청자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처음으로 조선백자 달항아리의 미적 가치에 주목한 이는 일본의 근대 도예운동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다. 잡지 ‘시라카바(白樺)’의 동인으로 활동하던 중 조각가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1884~1964)에게 조선 도자기 한 점을 선물로 받으면서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조선백자와 민속공예품들에 대한 글을 쓰다 내처 1924년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이런 활동은 우리 1세대 미술사학자이자 이론가인 우현 고유섭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최순우·정홍섭·황수영 등 광복 이후 한국미술계를 이끈 쟁쟁한 인물들이 고유섭의 제자다.

한국미술 연구 및 미술평론에 영향을 끼친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 및 동양문화에 눈을 뜬 것은 1909년 일본을 방문한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1887~1979)에게 화학적 표면처리 방법인 에칭을 배우면서부터다.

우리 1세대 학자들이 일본인에게 배우고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인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업적을 이룬 인물들은 대개 앞선 선지식들에게 영향을 받거나 사숙(私淑)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프루스트는 예술평론가이자 화가였던 존 러스킨에게 영향받았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이자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은 초현실주의 작가 아라공의 소설 ‘파리의 농부’를 보고 ‘아케이드 프로젝트’ 같은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은 후일 프로이트·융·미셸 푸코 등의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세계적인 경매사 크리스티가 내달 18일 미국 뉴욕에서 조선백자 달항아리 등 한국고미술품 경매에 들어간다고 한다. 경매에 앞서 서울 종로구 크리스티에서 27일, 28일 양일간 경매물품 전시도 열릴 예정이다. 탄핵 심의와 찬반집회에 트럼프 쇼크까지 바람 잘 날 없는 요즘, 우리 고미술품과 달항아리를 감상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