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제가 더 이상 의회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결론지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미국은 현재 우리가 대내외적으로 가진 문제를 고려해 임기를 모두 마칠 수 있는 대통령과 의회가 필요합니다. 저는 내일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1974년 8월 8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은폐하려는 모든 시도가 허사가 되고 미국 의회가 탄핵안을 발의하자 사임 백기를 든 것이다. 굴욕적인 하야의 의연한 연설이었다. 입법·사법·행정 3권이 자신을 외면한 현실을 인정했고, 사임이 미국의 이익을 위한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선택이라 했다. 사임은 면책특권과 맞바꾼 거래였다. 연설로 거래를 포장했다. 닉슨은 체면을 세웠고 의회는 정치 안정의 실익을 챙겼다. 미국 정치는 앞으로 나아갔다.
2025년 2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최후 변론을 했다. 67분 변론의 서두는 “12·3 비상계엄은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 “거대야당은 선동탄핵, 방탄탄핵, 이적탄핵으로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이것이 국헌문란 행위”라고 주장했다. “2시간 반짜리 비상계엄과 2년 반 동안의 줄탄핵, 입법예산 폭거”를 헌법의 저울에 올리고 위헌의 무게를 물었다. “비상계엄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근거로 ‘나라 지키기에 나선 많은 국민과 청년들’, 광장의 탄핵반대 여론을 상기시켰다. 개헌과 정치개혁을 직무복귀 이후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국민이 원하면 사임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다시 질서를 회복시키도록 모든 사람이 다 힘써주기를 내가 사랑하는 남녀 애국동포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육성으로 발표한 하야 성명이다. 4·19 혁명에 몰려난 대통령은 국가 질서 회복을 호소했다. 하지만 장면 내각은 5·16군사정변에 무너졌다. 극심한 정치 대립과 혼란이 빌미였다.
윤 대통령도 최후변론에서 국가와 국민을 향한 충정과 거대 야당에 대한 울분을 토했다. 충정은 탄핵반대 여론의 심금을 울렸을 테고, 울분은 탄핵지지 여론에 기름을 부었을 테다. 대통령의 진심은 관념이고 계엄군의 국회 진입은 사실이다. 분열된 정치와 여론이 대통령의 최후변론으로 완전히 분리됐다. 헌재 심판으로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