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9월 8일 헌법재판소는 참정권을 제한하는 국회의원선거법 33·34조(선거기탁금)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헌법의 의미를 규정한 명판례를 남겼다. “헌법은 국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국민생활의 최고 도덕규범이며 정치생활의 가치규범으로서 정치와 사회질서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사회에서는 헌법의 규범을 준수하고 그 권위를 보존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어 “국민은 이러한 헌법적 약속을 알고 있으며 이 상식으로 정치와 사회를 보고 비판하는 높은 의식수준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이러한 기초적인 원리와 현실을 망각하고, 헌법규범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고 현실에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헌법의 권위가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토착과 기본권 보호에 차질을 가져왔고 그것이 정치적 사회적 불안의 요인이 되어왔다”고 헌법기관인 국회, 국회의원을 질타했다.

현행 87개헌헌법은 시행 37년의 세월에 침식됐고, 헌법기관들이 침식을 주도했다. ‘국회의원’은 “청렴”과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할 의무(46조)에서 벗어나 ‘국회’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1조)을 위협하는 정쟁기관으로 전락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元首)”(66조)에서 정당·정파·진영의 대표로 격하되더니, 현직 대통령이 헌법이 강제한 선서(69조)의 첫문장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를 어긴 혐의로 탄핵심판대에 섰다.

‘법원’의 ‘법관’들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103조)하는지 의심받는다. 유전(권)무죄 무전(권)유죄 혐의를 입증할 지연된 정의로 정의를 고사시킨 재판들이 수두룩하다. 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헌법기관을 가족회사로 전락시켜 헌법을 하수도에 버렸다. 선거기탁금 규제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헌법기관(국회의원)을 질타한 89년의 헌법재판소도 상상하지 못했을 헌법기관들의 동반타락 현상이다. 급기야 헌법재판소마저 2025년의 탄핵정국에 갇혀 권위를 잃었다. 89년의 헌법재판소가 땅을 칠 일이다.

헌법은 낡았고, 헌법기관들은 망가졌다. 헌법의 국가와 국민만 위태롭게 고독하다. 전국시도지사들이 4일 공동개헌안을 공표했다. 같은 날 전직 총리, 국회의장 등 원로들이 서울대에서 개헌을 촉구했다. 5일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가 헌법개정 결의대회를 열고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87개헌 동력에 버금가는 국민적 궐기가 관건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