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밤 80대 아버지와 50대 아들이 한강에 뛰어들었다가 구조됐다. “아침에 아내이자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뜻밖의 자백이었다. 이들이 살던 고양의 아파트에는 80대 여성이 숨져있었다. 부자가 삶을 포기하려 한 배경에는 10년 간병의 고통과 경제난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수원에서 70대 남성이 말기 암을 앓고 있는 60대 아내를 숨지게 했다. 대신 간병할 사람도 없고 치료비도 감당이 안 됐다고 토로했다. 십수 년간 홀로 병간호를 해온 남편은 술을 먹고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했다. 지난 2022년 5월 인천에서는 60대 엄마가 38년간 돌보던 중증장애 딸을 살해했다. 이 여성은 법정에서 “혼자 살아남아서 미안하다. 나쁜 엄마가 맞다”고 오열했다.
간병지옥이 간병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8년 사이 간병살인으로 213명이 사망했다. 1년에 평균 16.4명, 매달 한 가정 이상 비극이 벌어지는 셈이다.
초고령화 사회, 노노 케어(老老 Care)는 현실이 됐다. 100세 시대, 간병의 굴레는 점점 더 장기화되고 있다. 독박간병은 일상을 파괴한다. 24시간 헌신하는 간병가족은 체력과 정신건강에서 한계에 부딪힌다. 아픈 가족의 그림자처럼 살다 보면, 외부와의 소통은 자연히 단절된다. 하루하루 ‘창살 없는 감옥생활’이 되고 만다. 삶의 질은 떨어지고 좌절감과 우울감은 높아간다. 간병가족을 ‘숨겨진 환자’라 부르는 이유다.
소득보다 간병비 지출이 많으면 생업을 포기하는 ‘간병실직’의 기로에 놓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하루 평균 간병비는 2019년 7만~9만원에서 2023년 7월 기준 12만7천원까지 뛰었다. 한 달이면 400만원, 일 년에 5천만원을 육박한다. 연간 사적 간병비는 2008년 3조6천억원에서 올해는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생활고를 겪는 간병가족들은 ‘간병파산’ 벼랑 끝에 내몰린다.
간병살인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범죄다. 존귀한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노노케어, 독박간병, 간병실직, 간병파산, 간병살인… 부실한 복지가 낳은 괴물 같은 말들이다. 가족의 헌신과 희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국가시스템도 유죄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