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난쏘공’… 용주골 성노동자
건물주는 보상, 여성은 퇴출당하는 현실
‘여성’으로도, 노동자로도 불리지 못하는 존재
공권력의 치적 위한 ‘만만한 대상’
네덜란드에서 온 성노동자, 연대를 말하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한국 사회 곳곳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빵과 장미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곳, 파주시 용주골의 풍경은 달랐다. 굴착기가 건물 외벽을 부수고 시멘트 조각이 흩날리는 가운데 성노동자 여성들은 의자에 앉아 영업을 이어갔다. 놀라움도, 분노도 사라진 자리엔 오랜 차별과 혐오에 익숙해진 체념만 남아 있었다.
파주시가 용주골 성매매집결지 철거를 천명한 지 어언 2년. 이곳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85명에서 60여 명으로 줄었다. 지자체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업(2024년 2월19일자 1면 보도)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6일 오후 3시께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서 일하는 성노동자 A씨(40대)를 만났다. 세계 여성의 날이 다가오지만 이곳에 도착할 빵과 장미는 없다. 철거된 건물을 지켜보던 A씨는 담담히 말했다.
“우리도 노동자인데 누구도 우리를 노동자로 보지 않아요. 그냥 사라져야 할 사람으로 취급될 뿐이죠.”
우리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우리를 쫓아내는 정책

과거 도시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절 도시 빈민들은 판자촌 철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문서 한 장 없이 밖으로 내몰렸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제 21세기 ‘난장이’들이 용주골에서 쫓겨나고 있다.
파주시는 올해를 성매매 집결지 폐쇄 원년으로 삼고 46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중 38억6천만원은 건물 매입비다.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일부 건물을 매입한 뒤 철거해 성매매 업소 운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곳 여성들은 “건물주에게만 이득이 돌아가는 행태”라고 꼬집었다.
현재 용주골에서 일하는 여성은 줄었지만 이들은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도심의 오피스텔과 모텔,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성매매 산업은 디지털화됐고 성매매를 원하는 수요가 있는 한 완전한 근절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건물만 철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정책이 추진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보호받는 것은 건물주뿐이다. 파주시는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지만 실제 철거가 가능한, 세입자가 한 군데도 없는 건물은 두 채에 불과하다. 일부 건물주는 매입가 상승을 기대하며 버티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논리에 기대 건물 값을 올리는 건물주와는 반대로 용주골 성노동자들을 보호할 법적 울타리는 없다. 이들 대부분 임대 계약 없이 월세를 내고 건물에 거주해 왔기에 주거권이나 퇴거 보상 같은 보호 조치에 기대기 힘든 상태다. 일반적인 도심 내 원룸을 떠올려보면 세입자들이 임대인의 요구로 퇴거해야 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다만 이들 성노동자는 세입자로 인정받지 못할 뿐이다.
강제 철거 대상 건물은 이들에게 일터이자 주거지다. 세상은 이들의 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지역은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파주시가 건물을 매입해주면 건물주에게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다. 이 때문에 건물주들이 성매매 업소 사장들에게 먼저 철거를 요구한 뒤 세입자인 성노동자 여성을 내쫓을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해당 정책이 건물주들의 이익만 보장해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용주골에서 24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60대)씨는 정작 철거되는 건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시의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의문을 표했다.
“30억원 넘는 예산을 받았다는데 사실 시에서 원하는 조건(세입자가 없고 즉시 거래가 가능한 곳)을 갖춘 건물들이 별로 없어요. 결국 몇 개 없는 빈 건물을 사들이고 있는 거죠.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은 법적으로 세입자도 아니고 보상 대상도 아니에요. 그냥 밀려나는 거죠. 시는 건물을 사지만 이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요.”
세계 여성의 날, 이들은 왜 ‘여성’으로 불리지 못하는가

시민사회는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되면 여성 노동자들에게 빵과 장미를 건네며 연대와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용주골의 성노동자들은 단 한 번도 그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여성임에도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을 해도 노동자로 불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여성단체와 노동계 모두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성착취로 규정하며 노동이 아닌 범죄의 결과물로 바라본다. 성매매 종사자들이 스스로 선택해 일을 하고 있다 해도 이는 구조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로 인해 강제된 것이기에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동계 역시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성매매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현실은 공공이 성노동자들을 손쉽게 치적의 대상으로 삼게 만든다. 시민사회가 이들을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공권력 개입은 거침없다. 단속과 철거 명분이 필요할 때 성노동자들은 사회적 반발 없는 손쉬운 표적, 만만한 대상이 된다. 이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기에 노동권을 주장할 수도 없고, 피해자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하기에 피해자로서 보호받지도 못한다.
철거 정책이 발표되고 공권력이 투입돼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재개발 지역 도시 빈민이 쫓겨날 때도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는 사회적 논의가 있었지만 성노동자들은 그런 논의에서 벗어나 있다.
한편, 파주시는 용주골 일대를 시민들과 거니는 ‘여행길’ 걷기 캠페인을 진행하며 성노동자들의 삶을 일방적으로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성매매 집결지를 기억의 공간으로 남기고 시민들에게 성매매 문제를 인식시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성노동자들은 해당 행사에 대해 “우리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구경거리로 만드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피해자’라는 이름 거부하는 용주골 여성들

“피해자라고 인정해야 지원해준대요. 우리가 피해자라고요? 근데 나는 여기서 내 힘으로 돈 벌고 내가 선택해서 일하는 거예요. 왜 내가 피해자가 돼야 하죠?”
앞서 파주시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한 자활 지원 예산으로 3억7천800만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정작 성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유는 근본적이다. 지원을 받으려면 ‘피해자’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지자체 등 국가는 성매매 종사 여성을 구조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성매매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착취당하는 행위이며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성노동자들은 이런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들에게 성매매는 강요된 희생이 아니라 생계를 위한 노동이다. 지원을 받으려면 포주에게 끌려와 억지로 성매매를 했다는 피해자 서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단순히 나누는 접근 방식을 강하게 거부한다.

이는 성매매에 대한 낡은 인식과 맞닿아 있다. 피해자 서사에서 성매매 여성은 폭력적인 포주에게 억압당하는 불쌍한 피해자로 설정되고 국가는 이들을 구조하는 시혜적 존재가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성매매는 강압이 아니라 생계와 밀접한 문제에 가깝다.
성노동자 여성들은 경제적 이유로 이 일을 선택했으며, 자활 지원을 받기 위해 구제받아야 할 존재로 규정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표한다. 자신들이 피해자로 규정되는 순간 스스로 선택한 삶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안전한 노동 환경과 제도권 내 보호가 더 절실하다고 말한다.
파주시는 ‘성매매는 불법이기에 그만두라’고 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은 없다. 다른 일을 하라는 말은 쉽지만 이들이 실제로 다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실효성 있는 정책은 부재하다. 생계를 이어갈 대안 없이 성매매를 중단하라는 요구는 결국 자신(성매매 여성)들을 빈곤으로 내모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성노동자들은 사회가 규정한 착취당한 피해자이거나 근절해야 할 범죄자라는 이분법에 갇혀 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어느 쪽도 이들이 원하는 삶은 아니다.
해외로 뻗는 연대… 건물은 무너져도 여성들은 남아 있다

현재 국내에서 성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연대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1월 파주시의 강제 철거에 맞서 용주골에 농성장을 꾸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이곳 여성들의 현실을 해외에 알리며 국제 연대를 추진 중이다. 성노동자 문제는 국내에서는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대신 이를 외부로 확산시켜 국제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7일에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성노동자가 파주 용주골을 찾아 이곳 성매매 종사자들과 서로의 처지를 공유했다. 한국과의 공통점은 도시 개발이 진행될수록 성노동자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져 터전을 잃고 쫓겨난다는 점이었다.
네덜란드는 성매매가 합법인 국가지만, 암스테르담 시장 펨커 할세마는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홍등가 영업장 축소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진보 정당 소속 정치인이자 백인 여성 페미니스트로 알려졌으나 성노동자의 권리 문제에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갈등을 빚고 있다.

이처럼 성노동자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보이지 않아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며 도시 개발이란 명분 아래 밀려나고 있다. 파주시는 용주골을 정화하겠다고 공표했지만, 정작 사라지는 것은 성매매가 아니라 성노동자들의 터전이다. 그리고 정화되는 것은 도시가 아닌, 사회가 불편해하는 사람들이다.
여름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는 “이 문제는 단순히 용주골만의 사안이 아니라 전 세계 성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이라며 “도시 정비와 재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성노동자들은 언제나 가장 먼저 쫓겨나지만 정작 이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국제적인 연대가 절실하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해외 성노동 단체들과 협력해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사회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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