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석방으로 여야 및 진영 간 갈등이 격화하면서 개헌 논의가 뒷전으로 밀렸다. 윤 대통령 석방 후 탄핵 찬반 세력의 시위가 더욱 극렬해지고, 여야 정치권은 헌법재판소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내일 헌재가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의 탄핵심판 결정을 선고하면, 국론 분열과 대통령 탄핵 찬반 대립이 극에 달할 것으로 우려된다. 반면 12·3 비상계엄 사태의 근본적 문제점을 찾고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헌법을 개정하는 논의는 더더욱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다.
정치권에서 개헌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의견은 분출하고 있으나, 목소리만 높을 뿐 정치적 숙의 과정은 시작도 안 된 상태다. 개헌 주제 토론회들도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여 개헌안을 발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여럿이 한자리에 모여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으로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개헌에 미온적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유정복 인천시장의 개헌안을 보자. 김 지사는 계엄 요건 강화, 경제 불평등 해소, 책임총리제 도입 등을 강조한다. 유 시장은 지역 대표형 상원 도입, 부통령직 신설, 대통령 형사상 불소추 특권 명확화 등을 주장한다. 방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개헌을 통해 국정 안정을 이루고 지방 분권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는 유사하다. 특히 김 지사와 유 시장은 4년 중임 대통령제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수도 이전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제기된 여러 개헌안에서 공통분모를 뽑아내 국회에 진입시키는 것이 시급하다. 큰 틀에서 합의하고 세부사항은 논의 과정을 거쳐 개별법에 담으면 된다.
지금이 개헌의 적기라는 것은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4~6일 전국 유권자 1천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헌을 통해 현행 대통령제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응답 비율이 54%로, 그렇지 않다(30%)보다 높았다. 권력 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응답은 4년 중임 대통령제(43%), 5년 단임 대통령제 유지(33%), 의원내각제(10%), 이원집정부제(2%) 등의 순으로 나왔다. 무엇이 됐든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한 것이다. 공론화가 늦어질수록 여야 간 정치적 유불리 계산 때문에 개헌이 어려워진다. 이제부터라도 개헌 공론화의 시간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