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월 20일 첫 임기를 시작했을 때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혐의로 탄핵당해 직무정지 상태였다. 그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직후 치러진 19대 대선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한 5월 10일까지 대한민국의 동맹외교는 작동하지 않았다. 경제대국 한국을 별렀던 트럼프는 답답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다려준 트럼프에게 세기의 이벤트로 보답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남북 데탕트 분위기를 예열하더니 3월엔 대미특사를 파견해 트럼프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요청 친서를 전달했다. 이후 2년간 트럼프는 두 차례 미북정상회담과 한 번의 남북미정상회동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달래고 어르며 전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대북제재 외교와 사드배치를 강행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없었거나 기각됐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장면들이었다. 트럼프의 한국 파트너가 누구였느냐에 따라 한반도 주변 환경과 질서는 지금과 확연히 달라졌을 테다. 그걸 헌법재판소가 결정했다.
트럼프가 황당하겠다. 4년 만에 다시 취임하니 한국 대통령이 또 직무정지 상태다. 허풍과 허세만 셌던 8년 전 트럼프가 아니다. 전략과 전술로 단련된 정치9단으로 돌아왔다. 우크라이나가 무릎을 꿇고 러시아는 아첨하고 중국과 EU는 노심초사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체면치레 수준에서 타협했던 방위비를 얼마나 올려달랄지 가늠할 수 없다. 당장 12일부터 철강은 대미수출 관세 25% 적용이 시행됐다. 삼성전자는 보조금 없이 투자만 늘려야 할 처지에 몰렸다. 러브레터를 나눈 김정은과는 우리 중재 없이도 만날 수 있다. 트럼프는 지금 한국을 쥐어짜낼 아이디어로 가득한 청구서를 매만지며 파트너가 빨리 확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등장할 때마다 한국의 전현직 보수 대통령이 탄핵에 갇혔으니, 기묘한 평행이론에 트럼프와 한국의 인연이 특별해 보일 정도다. 정상간의 상성(相性)은 국가외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라면 더욱 그렇다. 트럼프의 파트너가 윤석열 대통령인지, 조기 대선으로 선출될 새 대통령인지에 따라 국가의 진로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걸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관 8명이 결정하기 직전이다. 국가에도 운명이 있다면 신이 우리 편이길 바랄 뿐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