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우병 쇼크는 유럽 대륙을 먼저 휩쓸었다. 광우병(BSE·소해면상뇌병증)은 1986년 영국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성숙한 소에서 발병되는 뇌 질환의 일종으로, 소의 뇌가 천천히 스펀지처럼 변성을 일으켜 치사율이 매우 높다. 1996년 영국 정부는 광우병의 인간 감염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광우병 공포는 날로 확산됐다. 실제로 1994년부터 2007년 사이 영국에서 162명이 인간광우병(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보고됐다. 광우병은 1990년대 이후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스위스·아일랜드 등으로 퍼졌다. 미국과 중국은 20년 넘게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다.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이 처음 발생했다. 한국은 4년여 동안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했다. 그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수입 재개를 결정하자 극심한 사회갈등을 겪었다. 우려와 괴담이 뒤섞였고 ‘촛불집회’까지 촉발했다. MB정부는 성난 민심을 감안해 추가협상에 나섰고, 30개월령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되 광우병 발생 시 즉각 수입을 중단하기로 절충했다.
미국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전쟁은 세계 통상질서를 무시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무기로 각국과 합의하에 적용해온 관세 면제·예외조항을 백지화한다. 내달 2일에는 상호관세라는 거액의 청구서가 예고되어 있다. 한국을 ‘머니머신(현금인출기)’으로 불렀던 트럼프다. 지난 12일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소고기까지 들먹이고 있다.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중국·일본·대만은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을 인정해 30개월 제한을 해제했다”며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한국과의 개정협상을 요구했다. 한국은 이미 정육 기준 4년째 미국산 소고기의 최대 수입국이다. 지난해 22만1천629t을 들여와 전체 소고기 수입량 46만1천27t의 48.1%를 차지했다. 올해 미국산 소고기의 관세율은 2.6%지만 내년에는 사라진다. 전국한우협회는 성명을 내고 “지난 2년간 한우농가 1만곳이 줄고, 전체 농가의 12%가 폐업했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가 십수 년 만에 공론장에 슬그머니 발을 디뎠다. 지금까지 먹은 미국 소고기 양을 생각하면 광우병 괴담으로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월령제한 해제를 관세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다. 문제는 축산농가들의 공포다. 정교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미국산 소고기로 또 한 번 홍역을 치를 수 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