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직후 도널드 트럼프에 베팅했던 익명의 도박사가 4천800만 달러를 땄다. 온라인 베팅사이트 ‘폴리마켓’에서 벌어진 대박이다. 영국인들은 온라인 베팅업체 ‘베트페어 익스체인지’에서 미국 대선 때마다 수천억원의 판돈을 걸고 도박판을 벌인다.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에게 90% 이상의 판돈을 걸어 도박 사이트 배당률을 대선 승패의 가늠자로 격상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국제적인 내깃거리가 됐다. 폴리마켓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철회(당)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5일 7개의 베팅을 개설했다. 2024년 내 윤 대통령 퇴진에 86만5천여 달러를 베팅한 사람들은 판돈을 날렸다. 지금은 탄핵 인용(1.44배)과 기각(4.43배)에 돈을 건 사람들이 한국 헌법재판소의 심판 결과를 기다린다. 우리에겐 인용과 기각에 따라 나라의 진로가 바뀌는 탄핵이 외국인의 내깃거리로 전락했으니 씁쓸하다.

‘도박사의 오류’라는 용어가 있다. 동전을 던져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던질 때마다 2분의 1로 동일한데, 도박사들은 이를 부정하는 오류에 빠져, 앞면이 내리 9번 나왔으면 이번엔 100% 뒷면이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로또 1등 당첨번호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봐야, 814만5천분의 1인 1등 당첨 확률은 그대로인데, 구매자들은 오만 군데서 당첨의 기대를 찾는다. 불변의 수학적 확률을 개인의 심리적인 통계로 왜곡하는 오류다. 도박사의 오류에 빠진 사람은 도박을 끊기 힘들다.

지난 주말 탄핵 찬반 군중이 서울 도심 광장을 장악했다. 찬반 진영은 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 지체와 감사원장·검사 3명 탄핵안 8대 0 기각을 제멋대로 해석한다. 반대 측은 이를 대통령 탄핵 기각의 징조로, 찬성 측은 탄핵 인용의 사전정지로 해석한다. 자기확신의 오류를 앞세운 인해전술로 재판관들을 압박한다.

헌재의 심판은 사건마다 독립적이다. 탄핵광장에 모인 찬반 군중은 이를 부인하는 오류에 빠졌다. 심지어 집회로 심판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헌재 심판으로 광장의 집단오류를 치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탄핵 찬반으로 갈라진 국민이 헌재 심판 결과로 절반이 절반을 적대하는 파국에 이를까봐 걱정이다. 헌재 심판을 목전에 두고 고조되는 광장의 열기가 두렵다. 정당, 정치인만이라도 광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