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한 달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1928~2025)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더는 전쟁으로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없도록 앞장서온 길 할머니였다. 길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전하는 기사 제목에는 ‘7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부연 설명이 따라붙었다.

그중 한 사람인 이용수 할머니를 길 할머니의 빈소에서 뵀다. 대구에 거주하는 이 할머니는 어린 시절 같은 고초를 겪은 벗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인천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할머니가 조문을 마치고 빈소 밖으로 나올 때까지 ‘어떤 질문을 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길 할머니의 입관을 참관하고 나온 이 할머니께 취재진은 여러 질문을 했다.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7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대해 물어도, 길 할머니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느냐는 질문에도 이 할머니는 ‘배상’과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분통해 했다. 길 할머니 빈소 복도에는 여야 관계없이 수많은 정치인들이 보낸 근조기로 긴 줄이 세워져 있었다.

길 할머니의 발인식이 거행되던 날 이 할머니는 그제야 영면에 든 동지에게 “그동안 큰일 했다. 고생했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생전 받지 못한 배상과 사과를 자신이 받아내겠노라고 다짐도 했다. 그렇게 생전 길 할머니의 뜻을 기억하고 이어나가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발인식이 끝나고 대구로 돌아가신다는 이 할머니께 “꼭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했다. 카운트다운처럼 남은 숫자 ‘7’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동안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죄책감도 조금은 덜고 싶었다. 이 할머니는 대답 대신 손을 맞잡아 주셨다. 추운 날씨에 얼음장 같던 손을 녹이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꼭 한 달이 지난 일인데도 어제 일처럼 그 온기가 남아있다. 시간이 더 흘러도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