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비방 판단기준 모호” 주장
“사이버렉카 협박 빌미” 반론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공익적 목적에도 처벌과 소송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폐지 여론이 들끓고 있다.
내부고발과 미투운동 등 부조리함의 폭로에도 유죄 처벌과 손해배상의 표적이 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지적이 국회 국민동의청원 성립 요건을 넘길 만큼 지지를 받으면서다. 반면 악의적 폭로에 대응할 법적 보호망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17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보면 지난달 19일 올라온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요청에 관한 청원’은 6만3천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국민동의청원에서 5만명 이상 동의받은 청원은 국회 소관 상임위에 자동 회부돼 소위원회 심사와 의결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청원인 배모씨는 “현재 거짓 없이 다른 사람의 비리나 자신이 당한 피해를 고발하는 행위까지 모두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다”며 “공익 목적이 있었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지만, 공익과 비방의 판단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상대의 고소 남발로 비판을 위축시켜 부조리한 진실들이 은폐되고 있다”고 했다.
현재 형법은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럼에도 폭로의 파급에 따라 명예훼손 여부가 인정되면서 선량한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경인일보가 지난 2022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3년간 수원지법이 1심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선고한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40건의 재판 중 18건이 벌금형 이상의 유죄가 선고됐다.
같은 기간 수원지법에서 선고된 사실적시 명예훼손 관련 손해배상 민사소송은 230건으로 형사사건의 5배 이상에 달한다.
그러나 법조계 중심으로 빈번한 사생활 폭로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 유튜브 사이버렉카 등이 연예인들의 과거 연애사 등을 악의적 폭로하거나 이를 빌미로 협박·갈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완전히 폐지될 경우 법적 보호망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21년 2월 사실적시 명예훼손 처벌 사안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도 표현의 자유 및 진실 폭로보다 사생활의 비밀과 명예 침해 방지가 더 유효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송 남발 등 청원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아예 폐지되면 사회가 혼란해질 수도 있다. 공익과 관계없이 남의 사생활과 과거를 폭로하는 일이 늘어날 수 있어서 적절한 절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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