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거리 물가가 심상치 않다. 올해 들어 매달 가격 인상 소식이 들린다. 지난 2월 가공식품 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9% 올라 1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는데, 3월에도 상승세가 여전한 것이다. 식품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밥상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이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한 서민들은 불사춘(不似春)이다.
오랜 기간 이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밀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국내 밀가루 소비량은 연간 200만t인데 99%를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해 지구촌 곳곳의 이상 기후에 따른 커피 원두, 카카오, 옥수수 등의 생산량 감소에다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고공비행은 설상가상이다. 1천400원대의 원·달러 환율이 4개월째 지속 중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전쟁에다 작년 12월 초 비상계엄 이후의 정국 혼란이 원화 가치를 떨어뜨렸다.
정부의 가격 지도(指導)도 약발이 다했다. 탄핵정국에 눈치 볼 수장도 사실상 없다 보니 정부의 물가상승 억제 시도가 먹히지 않는 모양새이다. 지난달 11일 농림축산식품부가 가공식품 업체들에 가격 인상 자제를 부탁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일각에선 탄핵정국에 기업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크고, 정국이 혼란한 상황에서 물가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느슨해지자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나섰다는 얘기다. 한 정부 관계자는 “기업들이 탄핵정국이 끝나기 전에 가격 인상을 서두르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이다. 하반기 중에는 물가 상승 압력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1천500원대 천장을 뚫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관세와 환율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관세 압박과 무역 갈등은 결국 미 달러화의 강세로 귀결되고 상대국 통화는 절하로 귀결된다.
2년 만에 구제역이 잇따라 발생한 데 이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소식도 들린다. 2010년의 돼지고기 가격폭등 악몽이 조심스럽게 소환되고 있다. 경기둔화 속에 물가 상승세가 확대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는 중이다. 식품 가격 도미노 인상이 단기적으로는 기업 수익 제고에 도움을 주지만 중장기적으로 부담이 커진 서민들이 소비를 아예 하지 않는 소비 빙하기를 맞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