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맨홀에 빠진 페루 여성의 영상이 해외토픽을 장식했다. 일주일 전 도둑들이 철제 맨홀뚜껑을 훔쳐가는 바람에 나무뚜껑을 임시로 덮어놓아 발생한 사고였다. 다행히 사다리로 여성을 구조했지만, 하마터면 생사람을 잡을뻔했다. 2000년대 한국에서도 경기불황 때마다 유사 범죄가 빈발했다. 맨홀 뚜껑은 물론이고 가로수 보호용 철제 덮개와 등산로 펜스도 표적이 됐다. 밤새 학교 교문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소방호스에 달린 구리도 손을 탔다. 유가가 치솟으면 화물차 연료 도둑이 기승을 부렸고, 차주들은 연료통에 자물쇠를 채워야했다. 생계형 절도라기엔 계획적이고 대범하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6천624달러다. 11년째 ‘3만달러 박스권’에 묶여 있지만, 어쨌든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 이상)에서 세계 6위다.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발표한 잠정통계를 보면,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 다음이다. 3만달러 시대의 풍요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좌절하는 이들도 많다. 양극화의 두 얼굴이다.
78세 노인이 2천원짜리 단팥빵 두 개를 훔쳤다. 10년 전부터 뇌경색을 앓았는데 아내와 생활고에 시달렸다. 50대 여성은 마트에서 소고기 한 팩을 가방에 슬쩍 넣었다. 암 투병 중인 자녀에게 먹이려고 했단다. 77세 여성은 빌라 복도에 놓여있던 옷가방 3개를 유모차에 실었다. 고물상에 팔아 생활비를 마련코자 했다. 불과 넉 달 사이 벌어진 생계형 범죄들이다. 경찰은 동종 전과가 없고 딱한 사정을 감안해 모두 감경처분했다.
통계청의 경찰청범죄통계가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23년 발생한 절도범죄 18만9천570건 중 10만원 이하 범죄가 8만570건으로 43%를 차지한다. 10만원 이하 절도 건수는 2019년 4만8천597건, 2020년 5만3천74건, 2021년 5만4천987건으로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1만원 이하 절도는 2020년 1만2천993건에서 2023년 2만3천970건으로 1.8배 늘었다.
소액 절도라고 무조건 생계형 절도는 아니다. 상습 절도범과는 구분해야 한다. 절박한 생계형 범죄자에게 구제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당장의 온정보다 재기할 수 있는 디딤돌이 필요하다. 생계와 범죄의 경계에 선 장발장들은 없어야 한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