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권을 향한 행보
대선주자로서 지금보다 ‘체급’ 키워야
차별화된 민생 현안 정책 제시 못하면
‘정치지도자’로서 존재감 얻기 힘들어

인천 정가에서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유정복 인천시장의 대권 도전이다. 그가 대권에 나선 이유부터 탄핵심판 선고를 전후한 시기 정치 행보가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예측까지, 분석과 전망은 제각각이다. 유 시장은 공식 석상에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적은 없지만,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그의 행보는 대권을 향해 있다. 지난 19일에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 자격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예방하며 ‘4대 종단’ 지도자를 만날 계획임을 밝혔다. 앞서 15~16일에는 각각 인천, 서울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시민과 지지자들을 만났다. 이미 선거 모드에 돌입한 여느 대권주자들의 움직임과 다름없다.
유 시장이 일찌감치 대선 트랙에 나가 몸풀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컨디션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지역 정가 여야 인사들의 주된 반응이다. 본선이 시작되면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몸 만들기’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대선 주자로 나서 다른 선수들과 겨루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체급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정치 현안에 유 시장은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치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내는 메시지가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판단은 유효하다. 하지만 최소한 국민 실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민생 현안’에 대해 속도감 있고 구체적 대응 방안이 없다면, 그리고 다른 정치인과 차별화된 정책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 국민에게 ‘정치 지도자’로서 존재감을 얻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하다.
가장 최근 일로 ‘국민연금 이슈’에 유 시장이 한 발 비켜서 있는 것이 단적 예다. 국회 여야가 합의한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지난 20일 본회의를 통과하기 3일 전 유 시장은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미봉책을 내놓아 미래세대에 더 큰 부담을 지웠다’며 정부와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연금피크제’ 도입을 촉구했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여야 합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된 이후 22일까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여권 잠룡으로 불리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이 ‘국민연금법 개정안 거부 후 재논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개혁신당 의원 8명까지 ‘개정안 반대’ 입장에 나선 금~토요일 ‘주말 여론전’에서 유 시장은 자신만의 ‘국민연금 메시지’를 알리는 데 실패했다.
유 시장과 그의 참모들은 ‘대한민국 대통합, 찢는 정치꾼, 잇는 유정복’이라는 제목으로 이달 중순 출간한 책이 흥행몰이를 이어가지 못한 점을 되새겨 봐야 한다. 279페이지로 엮은 책 내용 중 100페이지가량이 ‘인터뷰 모음’ 등 부록으로 구성됐다. 유 시장의 이력과 시정 홍보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절반 이상이 ‘단순 홍보’에 치우쳐 있다. 설령 처음부터 대중서로 기획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 정치인 유정복의 면모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책의 내용 중 쟁점이 돼 언론과 정치권에 회자된 것이 없다. 한동훈 전 대표의 책과 비교하면 메시지 집중도에서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정치인은 국민의 마음을 사 권력을 획득한다는 측면에서 모두에게 공평하다.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지지율이 오른다. 유 시장의 신중함을 ‘몸 사리기’로 보는 이들도 있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로 선출되지 못한다고 해도, 다음 지방선거에서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무리하게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유 시장 쪽 인사들은 시기상조론을 말하기도 한다.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 여파로 어부지리를 기대하는 듯하기도 하다. 인천시 내부에서는 유 시장의 대선 후보 경선 참여 절차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트랙에 올라서기로 결정한 건 유 시장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제때 그리고 효과적으로 국민에게 전달하지 못하면, 누구도 먼저 알아주지 않는다.
/김명래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