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안덕근 산업부장관이 미국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만났다.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 후보국으로 올린 미 에너지부의 결정을 바꾸기 위한 회담이었다.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에 한국에선 자초지종을 살필 겨를 없이 난리가 났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핵무장론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국민의힘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친중·반미 노선과 줄탄핵을 원인이라 과장했다. 현상 파악과 대응에 육하원칙이 사라진 정치에 나라의 격이 무너졌다. 미국은 ‘민감국가’에 민감한 한국의 호들갑에 놀란 표정이다.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와는 결이 다르지만, 최근 대한민국이 ‘민감국가’임을 보여주는 정부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3일 발표한 ‘2024 사회통합 실태조사’는 우리 사회의 갈등도를 4점 만점에 3.04점으로 매겼다. 201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인데, 3.52점인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 정치 갈등이 사회 전분야의 갈등을 견인하는 대한민국, 정치적 ‘민감국가’다. 비상계엄 이전의 설문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을 통과하면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만수위에서 찰랑댈 테다.

정치 민감국가 한국이 사법 슈퍼위크를 통과한다. 오늘 헌재가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탄핵을 심판한다. 절정은 26일 민주당 이 대표의 선거법위반 재판 2심 선고와 주내(週內) 윤 대통령 탄핵심판 여부다. 이 대표의 대통령출마 여부와 윤 대통령의 직무복귀 여부로 생성될 네 가지 재판·심판 조합에 따라 십자로에 선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광장의 진보와 보수는 오직 하나의 조합만 원한다. 갈라진 군중은 극단적인 감정으로 위험한 분노를 키우고 있다.

유전자는 종의 번식을 위해 위협을 회피하는 쪽으로 진화했고, 위협적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의 감정은 진화의 결과라 한다. 한국정치의 갈등으로 정당과 진영이 서로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해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화가 아니라 퇴화이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극도로 민감한 신체적, 정신적 상태로 인한 병이다. 긴장감으로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박동이 느려져 뇌혈류량이 줄어 실신한다. 시야가 좁아지는 증상을 보인다. 광장의 군중이 보이는 증상이다. 사법 슈퍼위크를 거치면서 정치 민감국가 대한민국이 실신할까봐 조마조마하다. 정신 바짝 차려도 부족할 국제정세 아닌가.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