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이재명 망언집 책자에 불과

단순 홍보물 아닌 공신력 등 오해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망언집’ 이라 적힌 책자를 들고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3.21 /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망언집’ 이라 적힌 책자를 들고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3.21 /연합뉴스

정당이 제작한 정치 목적의 인쇄물이 책의 형식을 갖추고 출판물처럼 소비되고 있다. 정식 출판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제도권 밖 인쇄물이 도서로 인식되면서 정보 판단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국민의힘은 ‘이재명 망언집’이라는 제목의 책자를 당 원내대표실 명의로 제작해 배포했다. ‘이재명의 138가지 그림자’라는 부제를 달고 이 대표의 과거 발언을 정리한 내용이다. 표지와 판형은 일반 단행본과 동일하며,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직접 해당 책자를 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책자는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이 없는 등 정식 출판물로 유통되기 위한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편집: 이오디디자인’, ‘인쇄: 포인트테크’ 정도만 표기됐을 뿐 출판사 이름은 없다.

최근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에서 배포한 ‘이재명 망언집’ 표지.
최근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에서 배포한 ‘이재명 망언집’ 표지.

ISBN은 서점 유통과 도서관 납본, 서지 등록 등에 사용되는 고유 식별번호다. 이 번호가 부여되지 않으면 일반적인 도서 유통망에 등록되거나 도서관 등에서 열람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렇게 단행본처럼 제작된 정치 인쇄물이 ‘출간’이라는 표현과 함께 유통될 경우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공신력 있는 정보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 온라인상에서는 “출간됐다 해서 서점에서 찾아봤는데 없다”, “정식 책이 아니라 그냥 내부 인쇄물이었다”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유통망에 등록되지 않은 정치 목적의 인쇄물이 도서처럼 홍보되면서 혼선을 빚어낸 것이다.

지난 2020년 나온 이른바 ‘조국백서’나 ‘조국흑서’의 경우는 모두 ISBN을 부여받고 정식 출판사를 통해 유통된 도서였다. 독자가 서점에서 구매하거나 도서관을 통해 열람할 수 있는 형태로 당 차원의 자체 제작 인쇄물과는 차이가 있다.

정치 인쇄물이 출판물처럼 인식되는 상황이란 점에서 출판물 구분을 둘러싼 기준 정비 등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출판 제도 바깥에서 제작·유통되는 정치 목적의 인쇄물이 ‘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관행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제작과 배포는 자유이나, 출판물로 인정받으려면 일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ISBN은 각 출판사가 출판한 각각의 도서에 국제적으로 표준화해 붙이는 고유의 도서번호이며, 신청과 납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담당한다”며 “내용이 현저하게 극단적이거나 상업적 유통 목적이 불분명할 경우에 ISBN 발급이 거절될 수 있다”고 전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