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당에서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이란 현수막을 붙이니 여당에서는 ‘내전선동 이재명 즉각 퇴출’이란 내용으로 반격했다. 거리 곳곳에 나붙은 정당 현수막이 가뜩이나 양쪽으로 쪼개져 싸우는 국민 갈등을 부추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당 현수막이 거기 적힌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상대방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홧김에 정당 현수막을 훼손했다가 경찰 수사를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정당 현수막은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에 정해진 허가·신고, 금지·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법 제8조 8항의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하여 표시·설치하는 경우 예외로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이 예외 조항은 비영리 목적의 광고물이어야 한다. 정당 현수막이 여기에 해당하는 비영리 목적인지부터 따져볼 문제다. 정당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정이 선거이다. 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자극적 표현의 거리 현수막을 내건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게 과연 비영리라고 할 수 있는가. 정당은 선거에서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경우 더 많은 보조금을 가져간다. 거리 현수막에는 당연히 정당의 잇속이 숨어 있다.
거리를 뒤덮은 정당 현수막을 보고 쾌적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옥외광고물법의 제정 목적은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에 있다. 정당 현수막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감을 갖도록 한다면 그 자체로 법 취지를 훼손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옥외광고물법에서는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은 금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요즘 정당 현수막의 상대방을 비난하는 저급한 표현들을 보고 있노라면 청소년이 볼까 무서울 정도다.
정당 현수막을 옥외광고물법의 예외로 둔 것은 철저한 정치 기득권 누리기 차원의 입법이다. 국회의원들은 이 거리 현수막을 지역구 최고의 홍보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을 알리는 데 거리 현수막보다 효과적인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니 그들 스스로 법의 예외 조항을 만들어 합법화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더 나아가 정당 현수막을 없애달라는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다. 법 규정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어쩌지를 못한다. 국민을 짜증 나게 하는 정당 현수막,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정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