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이 날아다니고, 능선을 따라 불길이 무섭게 번졌다. 신라고찰은 전소됐고, 마을은 화마에 포위돼 잿더미가 됐다. 신목으로 여기던 900살 은행나무도 까맣게 탔다. 화마는 주택·창고·공장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삼켰다. 지난 21일 경남 산청에 이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했다. 경북 의성, 울산 울주, 경남 김해 등 23일 하루에만 31건에 달한다. 경기·인천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평·여주·화성·동두천·연천·인천 경서동 야산 등 곳곳에서 불이 났다.

‘초여름 같은 봄날씨’ 예보는 불길했다. 봄철에는 한반도 남쪽에 고기압, 북쪽에 저기압이 머문다. ‘남고북저’ 기압계는 서풍을 일으킨다.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고온 건조해지고 바람의 힘은 더 강해진다. 큰불 나기 쉬운 3대 조건인 ‘고온·건조·강풍’을 다 갖춘다. 실제로 의성 산불은 순간최대풍속이 35m까지 몰아쳤다. 불씨가 이산 저산 옮겨 다니는 ‘비화(飛火)현상’에 속수무책이다.

“불덩어리가 회오리처럼 올라왔습니다. 불덩이를 본 지 10초 만에 등 뒤로 화마가 덮쳤습니다.” 극적으로 생존한 산불예방전문진화대원의 증언이다. 5명이 부둥켜안고 웅덩이에서 몸을 움츠렸다. 불길이 등과 머리 위를 지나면서 방염복이 다 탔다. 경남 산청 산불에 함께 투입된 9명 중 진화대원 3명과 인솔 공무원은 불길에 갇혀 돌아오지 못했다.

산불진화대원은 지난 2003년 도입됐다. 산림청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한다. 현재 9천64명이 활동 중이다. 만 18세 이상 신체 건강한 지역 주민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시험은 1차 서류 전형과 2차 보고서 작성과 체력 검증을 거쳐야 한다. 체력 검증은 살수 장비인 10~15㎏짜리 등짐 펌프를 메고 빨리 걷기 등으로 평가한다. 고양시 덕양구는 지난해 100% 서류심사로만 선발했다.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불진화대원은 산불이 주로 발생하는 봄·가을에만 근무한다. 11월부터 5월까지 6개월 한시 계약직이다. 급여도 최저시급 수준이다.

산불진화대원은 고령자 일자리 사업으로 전락한 모양새다. 근무 연속성이 없고 처우도 낮으니 청장년층은 외면한다. 진화대원의 평균 연령은 2022년 기준 61세, 65세 이상이 34%다. 이번 산불로 희생된 진화대원도 모두 60대다. 매년 봄마다 환갑의 진화대원들을 사지로 내몰아서는 안된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