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29일, 한일월드컵 4강전이 열리는 날 아침이었다.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남북 간 충돌이 일어났다. 북한 함정이 NLL(서해북방한계선)을 침범해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정을 공격했다. 함포·기관포를 주고받는 치열한 격전으로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 등 6명이 전사했다. 북한군도 13명 사망, 25명 중상으로 피해가 컸다. 국방부는 2008년 4월 서해교전에서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했다.

2010년 3월 26일 고요한 밤,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경계업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이 침몰했다.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한 가슴 아픈 사건이다. 같은 해 11월 23일에는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했다. 북한군은 정전 협정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 민간인 거주구역을 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됐다.

서해수호 3대 사건(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과 함께 기억해야 할 전투가 있다.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이다. 6·25전쟁 이후 첫 남북한 해군 간 정규전투로 기록됐다. 금강산관광과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 기조에서 북의 도발은 기이했다. 북한 경비정은 꽃게잡이 어선들과 NLL을 침범하고 선제사격을 감행했다. 우리 해군의 화력은 압도적이었다. 교전 14분 만에 북한 어뢰정 1척을 격침하고, 경비정 5척을 대파시켰다. 북한군 30여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이 피격되면서 9명이 부상을 입었다. 10일간의 일촉즉발 대치전은 참전장병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여기, 불굴의 투혼을 발휘한 해군 장병들의 충정어린 감투정신과 빛나는 무훈을 기리고자 전장이 바라다 보이는 이곳에 전승비를 세운다.”(옹진군 연평면 제1연평해전 전승비 중에서)

‘제1연평해전’ 참전장병 32명중 13명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있다. 지난해 10명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신청했지만, 2명만 인정됐다. 국가보훈부는 교전 직후의 PTSD 진단서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비해당 결정’을 통보했다. 내일(28일)은 제10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서해수호 3대 사건에서 산화한 55용사를 기린다. 대한민국 영해를 지킨 영웅은 한명도 빠짐없이 올바른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아야 한다. 숭고한 희생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