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도동리 양관식이 아버지, 할머니와 겸상하던 밥상에서 어머니와 아내 오애순과 딸 양금명의 밥상으로 밥주발을 들고 돌아앉았다. 양관식은 유교적 규범, 제주도에서 유별났던 남존여비 가부장 문화에 등을 돌렸다. 훗날 딸 금명은 상견례에서 예비 시부모에게 숭늉을 떠주면서 ‘그 시절 아빠의 반바퀴가 혁명’이었음을 깨닫는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이다.
혁명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데 한바퀴 돌면 바꿀 수 없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탄생한 제1공화국은 왕정에 버금가는 반혁명 전체주의로 나폴레옹의 제정을 열었다. 혁명의 대의가 국민을 향하기까지 100여 년 지체됐다. 러시아 혁명도 한바퀴 돌자 제정이 공산전체주의로 대체됐다. 박정희는 통일주체국민회의로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를 향해 한바퀴 돌았고, 생전의 혁명은 사후에 쿠데타가 됐다. 한바퀴 혁명들의 잔혹사다.
혁명은 딱 반바퀴로 성공한다. 프랑스 대혁명 1세기 전 영국의 명예혁명이 그랬다. 왕의 지위는 인정하되 권리장전으로 자유시민의 권리를 보장했다. 왕실과 의회의 공존은 불문율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 철폐 혁명도 넬슨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로 성공했다. 한국의 87년 국민혁명도 개헌과 직선제 대선으로 제도적으로 완결됐다. 쿠데타의 피해자들은 새 질서를 수용했고, 가해자 단죄는 제도를 따랐다.
혁명의 진정한 대의는 공존일 테다. 공존은 반바퀴 돌아 등 뒤의 사람을 마주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87국민혁명의 요체였고 반바퀴 혁명의 대의였다. 불안하게도 시효가 다한듯한 징조가 뚜렷하다. 마주보는 민주주의가 맞서는 민주주의로 퇴화했다. 윤석열과 이재명만 보는 정당과 군중은 반바퀴 돌아 마주볼 생각이 없다. 다른 밥상에서 밥먹는 정치 때문에 나라 전체에 금이 생겼다.
정치가 마주앉아 밥상만 같이했어도 이 지경에 이를 리 없고, 비상계엄과 줄탄핵으로 헌법이 시궁창에 빠질 일도 없었다. 양관식의 반바퀴 혁명은 아버지와 할머니 밥상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아내와 딸의 밥상을 존중한 것이다. 혁명이 가능한 시대도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정치가 반바퀴만 돌 줄 알면 혁명적 전환이 가능하다. 정치의 기본인데 이걸 못해 나라를 위기에 처박는다. 드라마의 ‘반바퀴 혁명’이 유난히 귀에 박힌 건 답답한 시국 탓일 테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