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이는 예로부터 상서로운 선약(仙藥)으로 대접받았다. 고려 시인 이규보는 ‘신선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칭송했다. 향년 83세 조선 최장수 임금인 영조는 송이를 꿩고기·복어·고추장과 함께 ‘4대 별미’로 꼽으며 귀히 여겼다. “송이를 꿩고기와 함께 국을 끓이거나 꼬챙이에 꿰어서 유장을 발라 반숙에 이르도록 구워 먹으면 채중선품(菜中仙品)이다.” 당대 의관이던 유중림이 ‘증보산림경제’(1766·영조42)에서 송이의 음식궁합을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닐 테다.
“3대째 송이 산을 운영해 왔는데 제 대에 와서 완전히 타버렸네요.” “평생 먹고 살아온 터전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피해농들의 한탄이다. ‘괴물 산불’은 송이 주산지를 삼켜버렸다. 영덕군은 13년 연속 전국 생산량 1위를 지켜왔다. 바다는 영덕대게, 육지는 영덕송이다. 지난해 송이 생산량은 1만2천178㎏에 달한다. 하지만 화마는 지역 최대 생산지인 국사봉 일대를 휩쓸었다. 지품면·축산면·영덕읍 3곳의 송이산 4천㏊는 폐허가 됐다. 전국 송이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청송도 피해막심이다. 임산물 생산지 3천500㏊가 훼손됐다. 송이 생산 기반이 무너질 위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송이는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송이가 자생적으로 자라고 피해규모 산정에 산주 주관적 의견이 반영된다는 이유다. 산주와 피해농은 납득이 안 간다. 송이는 숲에서 거저 주워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정성이 필요하다.
산불이 삼킨 것은 송이뿐이 아니다. 사과, 마늘, 고추, 곶감 농가도 잿더미가 됐다. 청송·안동·의성 ‘사과 벨트’가 모두 직격탄을 맞았다. 의성 한지마늘밭의 푸릇했던 잎은 누렇게 변했다. 마늘통이 굵어지는 봄철인데 모종까지 말라버렸다. 영양 석보면은 고추 모종을 키우던 비닐하우스가 녹아내렸다. 곶감 주생산지인 산청 시천면 감나무는 시커먼 사목이 됐다.
영남 산불은 완전 진화됐지만 불안감은 꺼지지 않는다. 숲을 가꾸는데 30년, 태우는데 3초다. 불탄 토양이 온전히 회복되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은 65%가 사람 손에서 시작됐다. 이쯤 되면 4월 입산금지로 청명·한식이 없어질지 모를 일이다. 산불로 영남지역의 특산물은 씨가 마를 지경이다. 농가들의 한숨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면 100종의 생명체가 같이 사라진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