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도시 ‘대통령을 말하다’ 인문학 첫 강연
朴 대통령, 최악 조건서 최대 업적 남긴 대통령
집권기간 시위 진압에 단 한 번도 총 쏘지 않아
유신체제 아니었다면 한국 성장 더 늦춰졌을 것
비상계엄사태 계기 ‘대통령 중심제’ 고찰 필요

“최악의 조건에서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단기간 내 최대의 업적을 남긴 대통령, 그 인물이 바로 박정희입니다.”
월간조선 편집장과 대표이사를 역임한 조갑제 전 조선일보 기자가 말하는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다. 조 전 편집장은 1일 인천 중구 복합문화공간 ‘개항도시’가 ‘대통령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마련한 인문학 강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강연을 맡았다.
권한대행 기간까지 포함해 박 대통령이 집권한 기간은 17년, 이전까지 1인당 국민 소득 93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은 이 기간 급속하게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성공에는 희생이 뒤따른다지만, 박 대통령은 오늘날 자신을 독재자로 평가 받게 만든 대통령 중심의 결단으로 이 희생마저 최소화했다고 조 전 편집장은 기억했다.
그는 “1961년 당시 세계 1인당 국민 소득 통계를 보면, 103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87등에 불과해 가난한 나라에 속했다. 필리핀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가봉이나 파라과이보다도 소득이 낮았다”며 “이걸 뒤집은 때가 바로 박 대통령 집권 기간”이라고 돌아봤다. 이어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18년 가까운 기간 시위 진압을 위해 단 한 번도 총을 쏘지 않았다”며 “화염병과 돌이 여기저기서 날아들고 경찰차도 뒤집어엎는 시기, 발포 명령을 하지 않아 희생자가 거의 없다시피 한 건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임기 7년 간의 유신정권은 오늘날 독재 체제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유신체제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성장은 훨씬 더 늦춰졌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 대통령이 밀어붙인 중화학공업의 발전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자동차, 반도체 등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한 발판이 됐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 1·21 사태를 겪는다. 김신조 등 34명의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로 넘어오다 발각돼 시가전이 벌어진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박 대통령은 “우리도 무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공업이 발달해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중화학공업이라고 판단했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은 본격적으로 중화학공업을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석유 위기에 부딪힌다. 기름을 모두 수입해야 했던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위기였던 셈이다.
조 전 편집장은 “보통 지도자라면 일단 기름값이 떨어지는 등 위기를 극복할 때까지 중화학공업 건설은 중단하든지 축소하자고 했을 텐데, 박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그런데 때마침 재정이 급격히 불어난 중동 국가에 ‘건설 붐’이 일었고, 우리나라 업체가 중동에 진출하며 오일머니를 벌기 시작했다”며 “나중엔 우리가 석유를 사 오고도 남을 돈을 벌었고, 호랑이 굴에 들어간 이 전략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꿨다”고 했다. 이어 “대통령 생각을 밀어붙이려면 권력이 분산돼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선택한 게 1972년 유신 선포”라며 “독재라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국력을 조직화하고 능률을 극대화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선 오늘날의 대통령제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일각에서 ‘개헌론’이 고개를 들었는데, 조 기자 역시 이번 기회에 현행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데 동의했다. 조 기자는 대통령이 군 통수권까지 맡는 등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상황에서, 소위 ‘사고 치는 대통령’을 막을 대안은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정권 18년이 끝이 났고, 이후 12·12 사태 등 여진이 발생했다. 우리는 오는 4월4일 우리나라 역사에서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데, 대부분 탄핵 인용이라는 추측이 많다”며 “앞으로 평화적이고 합헌적인 방법으로 치러질 선거(조기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상황은 한국의 민주주의로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박 대통령을 교사, 군인, 혁명가, 그리고 위대한 CEO 등 네 가지 역할을 수행한 초인이라고 평가했다.
조 전 편집장은 “박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부정한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싶다”며 “좋은 지도자란 집권 시기에만 나라가 잘 되는 게 아니라 그 유산이 계속 이어져야 하고, 문명 건설에 기여한 사람이어야 한다. 히틀러처럼 파괴해서도 안 된다”며 “여기에 우리나라 지도자 중에서는 박 대통령도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개항도시가 마련한 ‘대통령을 말하다’ 인문학 강좌는 이날부터 오는 5월 27일까지 격주 화요일 오후 7시마다 진행(3월4일자 3면)된다. 박정희·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과 각각 인연이 깊은 굵직한 인사들이 강사로 참여해 시민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김희연기자 kh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