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비상계엄 선포, 잘못된 ‘용심’에서 비롯

탄핵 둘러싼 찬반대립, 정치적 후폭풍 심화

또 다시 과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민 합의에 기반한 개헌논의 불씨 지펴야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

전소된 천년고찰 고운사(경북 의성) 앞에서 성파 스님은 “이번 화재는 마음을 잘못 쓰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오는지를 보여주는 참담한 교훈”이라며 “잃은 것이 많은 만큼, 마음을 다스리는 법, 곧 용심(用心)을 배우는 것이 유일한 얻음”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한 사찰의 비극을 넘어, 오늘날 한국사회와 정치가 되새겨야 할 메시지처럼 들렸다.

성파 스님의 말을 들으며 기자는, 이번 계엄 선포 사태 역시 결국 잘못된 ‘용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국민적 상처와 분열, 경제적 손실까지 초래한 이 혼란은, 마음 하나의 욕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낳을 수 있는지를 되짚어 볼 수 있게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용심’은 주의 깊게 마음을 쓰는 것. 신중하게, 바르게 마음을 써야 하는데 이 마음이 탐욕으로 변질되면 방향을 잃는다. 사투리 중에 ‘심보’라는 말이 있다. 고약하고 뒤틀린 성정을 뜻한다. 지금 우리 정치권에 이 ‘심보’가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그 마음(용심)이 잘못되면, 나라도, 공동체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태가 증명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언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결국 파면됐다. 탄핵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비상계엄이 거대 야당의 무리한 입법과 잇따른 탄핵 시도로 인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지만, 야당은 이를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초법적 행위로 규정했다. 헌재 역시, 거대 야당의 국정 마비를 질책했지만, 정치·제도·사법적으로 풀었어야 했다고 판시했다.

헌재의 판결로 대통령은 물러났다. 그러나 탄핵을 둘러싼 찬반 대립과 정치적 후폭풍, 국론 분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정치권과 시민들 사이에 다시 개헌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현행 대통령제는 제왕적 권한 집중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2007년과 2018년 개헌 시도가 있었지만 국회에서 번번이 무산됐고, 이번 탄핵 사태와 비상계엄 논란은 다시금 개헌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현재의 정치 구조는 정쟁과 국정 마비를 반복하게 만들고, 위기 상황마다 정권의 정당성과 안정성이 흔들린다. 21대 22대 국회를 보면, 거대 정당의 일방 통치시 견제 장치가 미흡하다는 점이 노정됐고, 윤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과 비상계엄 논란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한 번 개헌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여야 원로들과 정치권의 다양한 세력이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는 이유는 현 체제의 한계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이재명 대표가 개헌에 반대하며 현 체제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지만, 정국 안정과 미래 대비를 위해 그 입장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국민적 통합이 절실하며, 그 수단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민의 뜻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방식은 바로 국민투표이며, 이를 통해 개헌의 필요성과 방향성을 묻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작금의 개헌 논의는 특정 정치세력의 유불리를 넘는 국가적 과제다. 두 번의 대통령 파면 사례와 제도적 모순은 지금이 개헌 논의의 적기임을 보여준다. 국민이 직접 개헌의 필요성을 판단하고,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해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을 정하자.

이미 연구는 충분하다. 국민투표를 통해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할 방안을 묻고, 차기 대통령은 취임 1년 내 개헌을 완수하겠다는 약속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마음’ 한번 잘못먹은 지도자의 오만과 이기심이 국정을 흔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이야말로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개헌 논의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진심으로 ‘用心’, 마음을 제대로 써야 할 때이다. 주말에 감동적으로 본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처럼, 현실 정치도 ‘수고하셨습니다’로 끝나야지 ‘또 속았다’는 탄식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그게 시대 정신이고, 대선승리 전략일 게다.

/정의종 서울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