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핵과 파면의 출발점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형성된 정치체제인 이른바 ‘87년 체제’는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양당제 정치를 정착시켰다. 하지만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진데 반해 제대로 견제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었고, 입법부는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갖춰지지 않은 채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그 결과가 현직 대통령이 두 차례나 연속적으로 파면되면서 초래된 전방위적 국가위기이고, 내전과 다름없는 국론 분열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개헌의 필요성이 국민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4일부터 6일까지 전국 유권자 1천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현행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과반이었다. 갤럽은 여야 지지층 간 견해차가 두드러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대권주자들도 속속 개헌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김동연 경기지사의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안과 유정복 인천시장의 지방분권형 개헌안도 그 일환이다. 국가원로들 역시 정치적 성향을 떠나 ‘87년 체제’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데 일치된 의견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국민적 공감대와 여망이 곧바로 개헌의 착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오는 6월 조기 대선 실시가 확정적인 가운데 현재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개헌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그동안 윤 전 대통령 파면이 우선이라며 개헌 논의와 거리를 두어 왔다.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고 중임제를 채택하자는 주장에 맞서 5년 임기를 채우고 그 다음 대통령부터 ‘4+4 중임제’를 하자는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번 탄핵심판 선고에서 짚은 것은 권력이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못한 현행 헌법 체제의 문제점이다. 입법부에 대해서도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했다’고 지적한 배경이다. 헌법이 가리키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나아갈 방향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로 읽힌다. 이만큼 선명한 개헌의 명분과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각 정파의 대선후보 경선에서부터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