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치라는 동물이 있었다. 사슴처럼 생겼는데 무시무시한 뿔이 특징이다. 누구는 그 뿔이 하나라고 했고, 누구는 둘이라고도 했다. 무기를 몰래 감추고 싸우는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나, 논쟁을 하면서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 어김없이 가려내 그 뿔로 들이받았다. 해치는 죄를 지었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발뺌하는 사람을 용케도 골라내 벌하는 능력이 있었다. 우리는 흔히 법(法)이라는 글자가 ‘물 흐르듯 간다’는 데서 연유한 것으로 이해하지만 좀 더 본질적 의미에서 법의 유래를 찾아 올라가면 해치라는 동물에 가닿는다.
사회부 기자 시절 법조를 담당한 적이 있다. 검사, 판사, 변호사 등 소위 법 전문가들과 늘 섞여 지냈다. 어느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지만 그들과 술도 많이 마셨고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들은 참 아는 것도 많았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에게서 한 가지 이상한 공통점을 보게 되었다. 잘못을 했어도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증거 지상주의 같은 거였다. 죄가 없다는 것과 법원의 무죄 판결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죄를 지었는데도 그게 발각되지 않으면 무죄가 된다. 법조인 중에는 이 ‘무죄’를 ‘죄 없음’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영락없는 연기자였다. 계엄령 발표에서부터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에 이르는 4개월 동안 그가 입을 열 때마다 거짓말 대잔치였다. 어쩌면 그렇게 눈도 깜짝 안 하고 거짓말을 참말처럼 연기하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법조 담당 시절 보았던 그 법조인들의 ‘들키지 않으면 무죄다’라는 식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비쳤다. 그는 계엄령 선포 직전에도 법전을 찾았다고 하는데 아마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게 합법 계엄으로 꾸밀 것인지, 어떻게 하면 위법을 증명하지 못하게 증거를 숨길 것인지를 궁리하기 위해 법 조항을 들췄을 게다.
8:0 탄핵을 결정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해치였다. 그의 수많은 변명을 모두 거짓으로 판명했다. 온갖 법 기술을 동원해 범죄를 덮으려는 그를 제대로 들이받았다. 그는 해치의 뿔에 의해 자리에서 끌어내려졌다. 그러나 그는 자리에서 ‘내려왔다’고 호도(糊塗)하고, 지지층을 선동했다. 쫓겨난 그가 스스로 내려온 것인 양 우기고 나서다니 대경실색할 노릇이다. 참으로 언어도단이다. 또 다른 해치가 뿔을 곧추세우고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정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