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 단속중 사고 에티오피아인의 ‘악몽 같은 그날’
고국서 탄압 피해 2022년 입국
“안 잡혀야 산다, 본능적 도망”
“더 나은 삶 꿈꿨지만, 멀어져”
출입국사무소, 사고 관련 ‘함구’

“단속반이 너무 무서웠어요. 소리 지르며 다가오니까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죠. 그냥 본능적으로 도망친 거예요.”
양주 출입국외국인사무소 단속반이 파주시의 한 골판지 공장으로 들이닥친 순간, 아미노(38)씨는 숨을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공포감이 밀려왔다. “안 잡히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미노씨는 지난달 이 공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을 피하려다 대형 압축 기계에 오른쪽 다리가 끼여 절단되는 사고(4월8일자 5면 보도)를 당했다. 단속반이 소리치며 공장 안을 뒤지는 상황에서 공포에 휩싸인 아미노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까운 기계 쪽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중심을 잃고 그만 넘어졌다.
지난 7일 저녁 서울의 한 병원 병상에 누워 있는 아미노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기계 근처로 갔을 뿐인데 발이 미끄러져 안으로 떨어졌어요. 당황해서 어떤 기계인지도 몰랐고, 무서워서 숨기만 했어요.”
아미노씨는 기계 안에 갇힌 채로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고 했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단속반이 저를 찾을까 봐 숨죽였어요. 두려움에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었죠. 그러다 갑자기 기계가 돌아가면서 다리가 끼였고, 그제야 비명을 질렀어요.”
1차로 도착한 병원에서 의료진은 아미노씨의 상태를 확인하고 “회생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소견을 내놨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결국 오른쪽 다리를 복숭아뼈에서 손가락 한 뼘 위까지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아미노씨는 에티오피아에서 정치적·사회적으로 탄압을 받는 티그라이족 출신으로, 탄압을 피해 지난 2022년 홀로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난민 지위 신청도 했다. 떠나온 고향에는 어머니와 아버지, 자매 3명, 남자 형제 2명이 남아 있다.
“엄마에게는 말하지 못했어요. 엄마는 심장이 약해서 이런 소식을 들으면 견디지 못할 거예요. 그냥 잘 지내고 있다고만 했어요.” 고향에 남겨진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할 수 없는 이유를 이야기할 때 아미노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야기를 하던 중 아미노씨는 이따금 호출 벨을 눌렀다. 절단된 다리가 욱신거려 얼굴을 찡그렸다. “밤만 되면 너무 아파요. 잘린 부위도 그렇고, 팔까지 저리고 아파요.” 아미노씨는 진통제를 맞고도 고통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아미노씨는 자신의 사례가 다른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가 한국에 온 건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더 나은 삶, 자유를 꿈꾸며 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제 꿈이 너무 멀게 느껴져요. 앞으로 이 다리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지만, 저 같은 사람들도 다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요.”
한편, 이와 관련한 반론을 듣기 위해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측에 요청했지만 “법무부를 통해 입장을 듣기 바란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유혜연·목은수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