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 파주 용주골 성노동자들이 강제 철거로 야기된 인권침해(4월7일자 5면 보도)를 국가인권위원회에 공식 제소한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의 답신을 계기로 국내 연대가 이어지는 데 이어 최근 해외에서도 강제 철거에 대한 우려와 성노동자 인권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며 용주골 사태가 국제적인 인권 논의의 장으로 확장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13일 용주골 여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오는 1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성노동자 생존권·주거권 위협하는 강제철거 규탄 및 인권위 진정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유엔여성기구의 답신과 시민들의 연서명 등을 토대로, 용주골 강제 철거가 국제 인권 기준에 어긋나기에 지자체의 공권력 행사가 부당하다는 점 등을 피력할 계획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싱가포르 인권 단체서 보내온 연대

현재 해외에서도 파주 용주골 성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향한 관심이 잇따르고 있다.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성노동자 인권 단체 ‘Project X’는 지난 8일 본보에 이메일 답신을 보내오며 용주골 사태에 대해 “성노동자 강제 퇴거는 부당하다고 본다. 성노동자들은 수십 년간 그곳에서 살아오며 일해왔기 때문에 세입자로서의 보호와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게다가 집창촌을 폐쇄한다고 해서 성노동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우려를 표했다.
Project X는 2008년 설립된 단체로 성노동자들이 차별과 폭력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법률 상담, 건강 정보 제공 등 권리 보장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싱가포르는 성매매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광고·알선·집결 등의 행위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Project X는 파주 용주골에서 벌어지는 강제 철거가 성노동자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성산업을 더욱 음지화해 폭력과 착취 위험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Project X 관계자는 “비공식적이고 불안정한 노동자로서 정부는 성노동자들을 지우거나 침묵시키려 하기보다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며 “성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싱가포르 내 유사 사례를 언급하며, 파주 용주골과 마찬가지로 당사자 협의 없이 성노동자가 내몰리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 거주자인 성노동자들이 당사자로서 공공과 어떤 논의도 하지 못한 채 정책이 추진된다는 점에서다.
Project X 관계자는 “오차드타워(Orchard Towers), 켕식로드(Keong Saik Road) 등은 과거 홍등가였지만, 범죄 사건과 경찰 단속·유흥업소 영업권 미갱신 등으로 성노동자들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2월 오차드타워 4층에 교회 입주가 발표됐고, 이는 지역 이미지를 ‘정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며 “리틀인디아(Little India)에서도 30년 넘게 운영된 업소가 폐쇄돼 성노동자들이 단기간에 생업과 터전을 잃는 사례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Project X 관계자는 “마침 넷플릭스에서 ‘성+인물(Risque Business)’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던 중이었는데, 이게 한국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며 “첫 에피소드에서 진행자들이 암스테르담의 홍등가를 방문해 모든 것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모습에 감탄하는 장면이 나왔다”라고 전했다.
‘1004’명 시민 연대 서명… 부당한 공권력에 인권위 제소 박차

한편, 국내에서도 연대 흐름이 싹텄다. 지난달 말까지 시민사회단체 43곳과 개인 961명이 참여한 온라인 서명에는 강제 철거의 부당함에 공감하고 성노동자 인권을 지지하는 뜻이 담겼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난민인권센터, 고려대 소수자인권위원회, 셰어,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등 주요 단체들도 동참했다.
그간 성노동자들이 불법적인 일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공론장에서 배제돼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국내외 연대는 혐오와 고립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흐름으로 평가된다.
앞서 유엔여성기구도 본보 답신을 통해 “성노동자와의 협의 없이 진행되는 정책은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책은 반드시 당사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마련돼야 하며, 성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름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는 “기본적으로 인권 감수성 없이 진행되는 강제 폐쇄에 대해 많은 이들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용주골 사태가 알려질수록 강제 폐쇄의 부당함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며, 이런 국내외 연대가 계속 확장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국내 여성 단체들도 용주골 사태에 더욱 관심을 갖고 연대해주길 바란다. 성노동자가 강제로 주거를 빼앗기는 등 인권 침해를 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모든 페미니스트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