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세종고속도로 안성 구간 9공구 공사현장에서 교량 상판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또다시 대형 토목·건설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11일 오후 광명 양지사거리 부근 신안산선 공사현장에서 시공 중인 지하터널과 상부 도로가 무너져 내렸다. 앞서 자정이 지날 무렵부터 지하터널 내부의 기둥을 비롯한 구조물 다수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주변 도로 통행이 전면 통제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인명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
공사현장 붕괴에 앞서 대피명령을 받은 인근 아파트와 오피스텔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긴급대피소에서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밤을 보내야만 했다. 체감상 훨씬 더 구체적으로 와닿았을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대형 싱크홀 사고 발생 이후 불과 20일도 안된 시점이다. 그때도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와 도로 아래 상수도관 파열 등이 주요 요인으로 추정되는 재해였다. 주민들의 불안과 걱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만하다.
붕괴 사고현장은 감사원이 2년 전 지반상태가 ‘매우 불량’하다고 경고했던 지점이다. 지난 2023년 1월 감사원이 작성한 ‘광역교통망 구축 추진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사고현장으로부터 19㎞ 떨어진 구간에 일부 단층파쇄대가 존재하며, 단층파쇄대 887m 구간을 포함해 지반상태가 ‘매우 불량’(5등급)한 2.9㎞ 터널 구간 설계에 ‘인버트’ 공법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공법은 터널 바닥에 역아치 형상으로 콘크리트를 타설해 터널 전체를 원형으로 만드는 시공방법이다. 지질구조가 불안전한 구간에서는 최선의 공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점이 미리 드러났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시공 매뉴얼의 미준수나 감리 감독 소홀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들도 있다. 현장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누적된 결과라는 것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조사가 끝나면 밝혀지겠지만 그 이전이라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만연한 채 고쳐지지 않는 안전불감증이다.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상판 붕괴사고 때도 짚었지만 이쯤 되면 토목과 건설로 일어난 대한민국이 전 세계로부터 토목·건설 후진국으로 조롱거리가 될 판이다. 자칫 ‘K-안전불감증’이 지구촌 토목·건설 현장 매뉴얼에 사례로 등재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월호 참사 11주기가 되는 올해 4월에도 한국의 안전불감증은 계속 진행형이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