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교롭게도 엊그제 20일은 곡우(穀雨)와 부활절이 겹쳤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올해는 밭고랑에 빗물이 고일 만큼 충분히 내렸다. 풍년 예감이다. 농부는 곡우가 낀 4월이 제일 바쁘다. 논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곡우에 내리는 비를 곡우비라고 하는데 이 곡우비는 씨앗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야말로 생명수이다. 볍씨가 모가 되고, 모는 벼가 되고, 벼는 우리에게 밥이 된다. 이 일련의 순환은 절기 바뀜의 자연스러움과 농부들의 수고로움이 없다면 불가한 일이다. 낟알 하나가 풍성한 가을의 결실로 이어지는 자연법칙이 신비롭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장일순 선생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고 했다.
곡우는 잉태의 절기다. 그 곡우를 노래한 시인들도 많다. 맹문재는 ‘곡우 무렵’에서 ‘봄비가 나무처럼 걸어오네 볍씨가 사람처럼 반기네’라고 했다. 곡우에 내리는 비가 볍씨에게도 사람에게도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리라. 류병구는 ‘곡우’란 시에서 ‘좁다란 가마니 속에서 긴 잠을 잔 씨나락이 졸음을 문 채, 솔가지 틈새로 늦봄 간을 본다’고 노래했다. 솔가지는 여기서 왜 나오나 싶은데, 옛 사람들은 볍씨를 가마니에 담아 둘 때 부정한 기운이 함부로 덤비지 못하도록 솔가지를 덮고는 했다.
많은 교회가 부활절이면 계란 나누기 행사를 한다. 기독교계에서는 날달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걸 예수 부활에 비유하여 계란을 부활절 상징으로 삼는다. 올 부활절에 어떤 교회에서는 계란 2개를 한 묶음으로, 어떤 곳에서는 계란 1개와 요구르트 1개를 한 꾸러미로 포장해 나누어주기도 했다. 우리와는 다르게 계란 값이 금값으로 폭등한 미국에서는 이번 부활절에 가짜 계란 열풍이 불었다고 한다. 진짜 대신에 가짜 계란이라도 만들어 부활절을 기념하고 싶었던 게다.
씨나락이 비를 만나 새싹을 틔우듯, 병아리가 계란 껍데기를 뚫고 나와 닭으로 크듯, 바야흐로 우리나라도 새롭게 변모해야 할 시기다. 밖에서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 여파가 거세게 밀어닥치고, 안에서는 작년 말 느닷없는 계엄 사태로 인한 대통령 탄핵과 선거로 어지럽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나라에 곡우비가 되어야 한다. 부활절의 계란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 탄생을 예비해야 한다.
/정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