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질 민원인들의 행태가 금도를 넘은 지 오래다. 대민업무를 하는 행복민원실은 공포민원실이 됐다. 드러눕고 소란을 피우는 건 예사다. 흉기를 휘두르고 불을 지르기도 한다. 염산테러로 얼굴에 화상을 입히기도 한다. 항의는 밤낮이 없다. 새벽에 숙직실로 전화를 걸어 고함을 쳐댄다. 이쯤 되면 이성적으로 설득하고 넘길 수준이 아니다.
“경찰이 돈 받고 증거를 인멸했다.” 인천의 50대 A씨는 지난 1년간 112에 388번이나 거짓 신고를 했다. 사건이 원하는 대로 처리되지 않고 종결됐다고 앙심을 품었다. 국민신문고에는 786회 진정 폭탄을 넣었다. 분이 안 풀렸는지 온라인 커뮤니티에 허무맹랑한 글을 반복적으로 도배했다. 결국 지난 18일 무고, 명예훼손 등 혐의로 구속됐다.
“왜 눈을 제때 치우지 않냐” “제설제를 잘못 살포해서 포트홀이 생겼다” “포트홀 보수공사 때문에 차가 꽉 막혔다”… 민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공사 담당 공무원’을 공격의 먹잇감으로 삼았다. 지난해 3월 인터넷카페 ‘좌표찍기’에 시달리던 김포 9급 공무원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인의 개인 컴퓨터에는 ‘힘들다’는 세 글자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를 괴롭히던 민원인 2명은 약식기소 처분에 그쳤다.
김포공무원 사망 사건을 계기로 공공기관 홈페이지가 달라졌다. 담당 공무원의 실명부터 가렸다. 기관 전화번호 옆에 직위와 담당업무만 안내한다. 기존에 하던 특이 민원 모의훈련도 확대했다. 웨어러블캠(착용형 영상촬영기기)을 장착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악성 민원 전담팀과 대응 전문관까지 등장했다.
이제 악성 민원인을 강제로 쫓아내도 공무원은 법적 책임이 없다. 기관은 상시 녹음시스템을 갖춰야 하고, 민원응대 권장시간도 정할 수 있다. 민원인이 폭언과 폭행을 하면 수사기관에 고발하고 소송비용도 지원한다. 행안부는 지난 21일 ‘2025 민원행정 및 제도 개선 기본지침’을 내놨다. 법적 근거는 마련됐다. 하지만 예산과 실천 의지가 뒤따르지 않으면 허공 속 외침이 될 수 있다.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 됐더니 욕만 먹는다.” 새내기 공무원들이 줄사표를 던진다. 2020~2023년 스스로 그만둔 8·9급만 5천명이 넘는다. 악질 민원 때문에 그만둘 결심을 한다면, 고장 난 사회다. 상식적인 국민만 감동 행정을 누릴 자격이 있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