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물공장 노조 집회 천주교만 연행
14명 선별해고… 바티칸 보고되기도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열기에 더해 유흥식 추기경의 교황 선출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어느 때보다 로마 교황청(바티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과거 바티칸이 주목했던 직물공장 노동운동인 일명 ‘강화 사건’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강화 사건’은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 직물 산업의 본거지였던 강화도에서 벌어진 직물 공장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을 일컫는다. 1967년 5월 강화지역 최대 직물 공장인 심도직물에서 노조가 결성되었다. 전국섬유노조 직할 심도직물분회가 만들어졌다. 노조 결성 시도 10여 년 만의 성과였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던 사측은 1968년 1월 노조 분회장 박부양 씨를 해고했다. 이에 맞서 500여 명의 노조원들은 집회를 벌였다. 경찰이 출동해 집회 참석 노조원 중 천주교 신자만 골라 연행하고 조사했다.
삼호직물과 이화직물 등 다른 직물 공장에서도 직원 중 천주교 신자만을 선별해 해고했다. 해고 노동자는 총 14명에 달했다.
심도직물이 포함된 21개소 직물회사 모임인 강화직물업자협의회에서는 JOC 회원은 고용하지 않을 것, 천주교 강화본당 전미카엘 신부가 사퇴하지 않을 경우 휴업도 불사한다는 등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 문제는 전국적 관심을 끌어 강화지역 직물 공장 해고 노동자를 돕기 위해 하루 한 끼 굶기 운동이 펼쳐졌고 이렇게 모인 쌀이 강화도로 보내졌다. 모금 운동도 일어나 11만 원 넘게 걷혔다.
당시 JOC 총재였던 김수환 주교까지 나섰다. 한국천주교주교단은 노동자의 권익 옹호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사건은 프랑스 가톨릭 잡지에까지 실렸고, 바티칸에도 보고되었다. 당시 교황은 바오로 6세였다. 강화 사건은 결국 1968년 7월 노동자들이 전원 복직하면서 일단락되었다. 바티칸은 교황 바오로 6세의 뜻을 담은 격려문을 한국 주교회의 의장 앞으로 전달했다. 바티칸은 격려문에서 ‘한국 주교단이 교회의 사회정의에 관한 가르침과 그 실천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정진오기자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