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누구인가

 

비주류 자처 ‘사이다 발언’ 주목

2017년 대선 경선때 리더 존재감

인천 계양구서 여의도 입성 성공

1986년 11월 경인일보에 실렸던 이재명 전 대표 사법고시 합격 인터뷰. 당시 그는 “앞으로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억울한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인일보DB
1986년 11월 경인일보에 실렸던 이재명 전 대표 사법고시 합격 인터뷰. 당시 그는 “앞으로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억울한 사람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인일보DB

‘변방장수’, ‘비주류’를 자처하던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느덧 ‘어대명(어차피 대선후보는 이재명)’의 주역이 됐다. 정치적 기반지인 경기도에서 다시금 대권 문턱에 선 이 전 대표는 지난 2017년과 2022년에 이은 세 번째 도전에서 가장 유력한 주자로서 ‘이제는 이재명’을 외친다.

■ 경기도에서 성장한 ‘변방장수’

1963년(호적상 1964년생)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이 전 대표는 인생의 상당부분을 성남시에서 보냈다. 어려웠던 환경은 그를 단단히 키워냈다. 그의 첫 대선 도전 선언지였던 성남 오리엔트 시계 공장은 이 전 대표가 소년공으로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 때 발생한 사고로 팔이 비틀어져 공장 일을 할 수 없게 됐지만 좌절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1986년 28회 사법시험을 통과해 성남시에서 인권변호사로 일했다. 청년 변호사는 지역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공공의료원 설립 추진을 계기로 정치인의 길을 택한 이 전 대표는 두 번의 낙선 끝에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이 전 대표의 행보는 여느 단체장들과 달랐다. 스스로를 ‘변방장수’ ‘비주류’로 칭하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사이다’ 같은 모습에 그에 주목하는 시선이 하나 둘 늘어났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거듭난 이 전 대표는 2017년 대선 경선에 참여하면서 차기 리더로서의 존재감을 굳혔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이듬해인 2018년 경기도지사직에 도전해 당선됐다.

코로나19 팬데믹 등 도지사 재직 당시에도 대내외적 어려움이 이어졌지만, 경기도 차원의 재난 기본소득 지급으로 자신의 대표 정책인 ‘기본소득’을 전 국민에 각인시키는 등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특유의 추진력을 앞세워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현해낸 이 전 대표는 2022년 현역 도지사로선 처음으로 당내 대선 후보로 선출되며 두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지만, 불과 0.73%p 차이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고배를 마셨다.

■ 인천에서 이뤄낸 여의도 입성…‘어대명’은 실현될까

2017년 대선 경선 패배 이후 곧바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던 이 전 대표는 2022년 낙선 직후에도 쉼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석 달만인 그해 6월 자신의 정치적 기반지인 성남 분당이 아닌, 인천 계양구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도전해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이어 기세를 몰아 같은 해 8월 당권 경쟁에서도 승리, 민주당 대표가 됐다. 두 번의 대선 도전 실패는 이 전 대표에 큰 시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치인 이재명의 최대 약점으로 꼽혔던 부족한 당내 기반을 채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표로서 당 안팎을 빠르게 장악한 이 전 대표는 2024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대승으로 이끌며 ‘여의도 대통령’ 칭호까지 얻었다.

가장 유력한 차기 주자로 입지를 다지던 이 전 대표에게 기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에 따른 윤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조기 대선이 확정된 가운데, 권역별 순회 경선에서 내내 여유있게 승리한 그는 27일 자신의 정치적 기반지인 경기도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로 재차 확정됐다. 온갖 역경에도 꺾이지 않았던 성남의 ‘변방장수’는 이제 가장 확실한 선봉장으로서 경기도지사 출신 첫 대통령 탄생을 이끌고 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