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소에서 온 편지

 

“한국서 아이 낳고 아내와 생활”

보호해제 거절뒤, 가족과 생이별

6월부터 보호연장시 외부심사 의무

그 이전 관리실패 리스크 회피 정황

송환 서두르는 과정 인권침해 우려

외국인보호소 내 구금자들에 대한 보호 연장시 외부심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시행을 한달여 앞두고 장기 구금자 송환이 급박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오전 화성시 법무부화성외국인보호소로 한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2025.4.28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외국인보호소 내 구금자들에 대한 보호 연장시 외부심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출입국관리법 개정안 시행을 한달여 앞두고 장기 구금자 송환이 급박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8일 오전 화성시 법무부화성외국인보호소로 한 차량이 들어가고 있다. 2025.4.28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전쟁과 박해, 가난을 피해 이 땅에 닿았다. 그렇게 난민과 이주노동자가 도착한 이곳엔 공장과 논밭이 있었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환대가 아니라 통제였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장기 구금이 행해졌고 ‘불법’이란 틀에 갇혔다. 오는 6월 무기한 구금을 제한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 시행을 앞두고, 법무부가 장기 구금자 송환을 서두른다는 의혹은 짙어지고 있다. 실은 송환이 아니라 추방이다. 외국인보호소 안팎에서 난민과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짚고 공존을 위한 길을 찾아본다. → 편집자주

한바탕 호송 작전이 끝난 뒤,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돼 있던 나이지리아 출신 난민신청자 V씨는 손으로 작성한 삐뚤빼뚤한 짧은 편지를 전해왔다. “나는 바꿔 입기를 거부했는데, 수갑을 채우고 마스크로 얼굴을 덮고 공항으로 이송했다.” 매끄럽지 않은 단어들 사이로 억눌린 공포와 절박함이 선명히 배어 있었다.

V씨는 난민 신청을 했으나 거절당한 뒤, 재신청 절차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지난 18일 그는 머리에 보호대를 쓰고 손목과 무릎에 포승줄이 채워진 채 인천공항으로 이송됐다. 비행기 탑승 직전, 항공사 직원의 반복된 탑승 의사 확인 끝에 송환은 무산됐지만 다시 보호소로 끌려갔다. 이후에는 독방에 격리됐다. 법무부가 작성한 ‘특별계호통고서’에는 V씨의 독방 수용 사유로 ‘지시 불응’이 기재돼 있었다.

28개월 넘게 구금됐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Y씨가 국제 시민사회단체(Migrant Forum in Asia)에 보낸 이메일 호소문. 가족과 생계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심경과 강제송환 압박 상황을 담고 있다.
28개월 넘게 구금됐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Y씨가 국제 시민사회단체(Migrant Forum in Asia)에 보낸 이메일 호소문. 가족과 생계를 지키기 위한 절박한 심경과 강제송환 압박 상황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편지는 이메일로도 도착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Y씨가 국제 시민사회 단체(Migrant Forum in Asia)에 보낸 긴 호소문이었다. 28개월 넘게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있던 그는 스스로를 “아버지이자 남편이며,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자 노력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Y씨는 한국에서 태어난 미등록 이주아동을 둔 아버지다.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고액 범칙금을 납부하고 보호해제를 신청했지만, 결국 송환 대상자로 지목됐다.

보호소 관리자는 그에게 “아이의 비자가 승인돼도, 법원 중지명령이 없으면 당신은 추방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아이와 아내를 남겨둔 채,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편지에는 보호소 관리자들이 직접 “당신은 법무부 추방 1순위 명단에 올라 있다”고 경고한 정황, 강제송환 일정을 암시하며 “길게 남지 않았다”고 심리적 압박을 가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

Y씨는 이렇게 적었다. “내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나 이곳을 고향으로 알고 자랐다. 만약 내가 떠나야 한다면 이 아이의 삶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탈출구는 더 이상 한국 정부가 아니라 국제 인권 단체를 향한 외침이었다. V씨와 Y씨는 시민단체와 국제사회에 보낸 편지로 한국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알렸다.

법무부의 송환 시도 이후, 외국인보호소에 재수감된 V씨가 손으로 작성해 전달한 손편지. 강제 이송 과정에서의 공포와 저항을 담고 있다. /이주인권단체 마중 제공
법무부의 송환 시도 이후, 외국인보호소에 재수감된 V씨가 손으로 작성해 전달한 손편지. 강제 이송 과정에서의 공포와 저항을 담고 있다. /이주인권단체 마중 제공

오는 6월, 출입국관리법 개정 시행이 예정돼 있다. 개정안은 보호소 내 무기한 구금을 제한하고 보호 연장 시 외부 심사를 의무화한다. 그러나 제도 시행을 한 달여 앞둔 지금, 외국인보호소 안팎에서는 장기 구금자 송환이 급박하게 추진되고 있다.

‘마중’을 비롯한 이주인권단체들은 “법무부가 구금자 송환을 조속히 서두르려 한다”고 지적한다. 법무부는 모든 조치가 현행법에 따른 합법적 절차라고 말하지만, 시민사회는 “절차적 합법성만으로는 현재 벌어지는 송환 가속의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며 인권 침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개정안 시행으로 보호 연장이 외부 심사를 반드시 거치게 되면 법무부는 더 이상 구금 연장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구금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위원회에는 시민사회가 추천한 인사와 변호사도 들어가게 돼 있다. 그간 구금과 송환을 법무부가 일방적으로 관리해온 체계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거는 조치다.

외부 심사 결과에 따라 보호 해제 결정이 늘어나면 법무부는 외국인 관리 실패라는 비판, 통제 정책 신뢰 약화, 보호소 운영 부담 증가 등 복합적인 리스크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구조적 변화 앞에서 제도 시행을 앞둔 시점에 강행되는 송환 시도들이 인권 침해적 양상을 띤다는 우려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그 현실은 지난 23일 이들의 송환을 둘러싼 국가의 행정력과 시민사회의 저항이 정면으로 충돌한 순간 선명히 드러났다. 송환을 막으려 호송버스 앞을 막아선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경찰이 끌고 가면서 물리적 마찰도 벌어졌다. 시민들은 호송버스를 가로막으며 외쳤다. “We are here for supporting you(우리는 당신을 지키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날 Y씨는 결국 송환됐다. 아이와 아내를 남겨둔 채였다.

그리고 이튿날 오전 보호소에서 또 다른 메일이 도착했다. Y씨의 룸메이트가 보낸 것이었다. 그는 “현재 Y의 행방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받지 못했다”며 “그의 추방을 목격한 구금자들에게는 깊은 두려움과 불안감이 남았다”고 했다.

이 모든 장면이 펼쳐진 곳은 화성시, 화성외국인보호소였다. 절차는 합법이었고 ‘보호’라는 이름을 썼지만 실상은 통제와 추방 그리고 강제구금이었다.

/유혜연·목은수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