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말살 정책 멈추라”

 

산으로 둘러싸인 동두천 한 지역

1951년부터 미군 주둔 ‘통행불가’

유일한 진·출입로는 비포장 임도

전입 주민 통행증마저 발급 제한

미군부대와 산으로 둘러싸여 일반 차량의 이동이 어려운 ‘육지 속 섬’ 동두천시 걸산동은 군부대를 통과하는 신규 통행증 발급이 제한된 탓에 직접적인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걸산동 마을 초입의 버스정류장. 양쪽 모두 통행증이 없으면 산길을 넘어가야 시내로 나갈 수 있다.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미군부대와 산으로 둘러싸여 일반 차량의 이동이 어려운 ‘육지 속 섬’ 동두천시 걸산동은 군부대를 통과하는 신규 통행증 발급이 제한된 탓에 직접적인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걸산동 마을 초입의 버스정류장. 양쪽 모두 통행증이 없으면 산길을 넘어가야 시내로 나갈 수 있다.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동두천시 걸산동은 ‘육지 속 섬’으로 불린다. 마을을 둘러싼 미군의 통행증이 없으면 정상적인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규 통행증 발급이 중단된 마을은 이제 소멸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 주한미군에게 통행증 발급을 요구할 근거는 없고 관련 기관 모두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걸산동은 오랜 기간 미군 주둔으로 피해를 받아온 경기 북부를 상징하는 사례다. 걸산동의 현황을 비롯해 관련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와 대안을 3차례에 걸쳐 모색해 본다. → 편집자 주·관련기사 3면

차로 동두천 시내에서 7~8㎞를 더 달려 동두천 화력발전소를 지나자 정식 도로가 끊겼다. 표지판도, 신호등도 없이 도로가 끝나는 이 지점이 걸산동 마을로 진입하는 입구였다. 포장되지 않은 임도는 동두천 걸산동의 유일한 진출입로다. 산불 발생 시 소방차가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임도가 일반 자동차 통행에 제 역할을 할 리는 만무했다.

차로 이곳을 달릴 때 낼 수 있는 속도는 고작 10㎞/h로 이렇게 30분을 달려야만 걸산동에 도달한다.

‘걸출한 인물이 나는 땅’이라는 의미의 인걸지령(人傑地靈)에서 유래한 걸산동이 고립된 건 1951년부터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육지 속 섬’이 됐는데 마을 입구와 남쪽은 군부대가 진을 쳐 통행이 불가능해졌고, 동북쪽은 소요산 자락에 가로막혔다. 이 때문에 유일한 진출입로가 굽이진 산길이 됐다.

농산물 운반도 지게를 사용해야만 했고, 시간이 지나 비포장 산길로 차량을 이용하게 됐다. 1970년대 중반 미군 기지를 통과할 수 있는 통행 허가증이 나오기 전까지 ‘생고생’이 이어졌으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04년까지 미군의 비상경계가 내려지면 통행증이 있어도 출입이 막혔고 현재도 3년에 한 번 재교부를 받아야만 통행증 효력이 유지된다.

미군부대와 산으로 둘러싸여 일반 차량의 이동이 어려운 ‘육지 속 섬’ 동두천시 걸산동은 군부대를 통과하는 신규 통행증 발급이 제한된 탓에 직접적인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걸산동 마을 진입로에서 바라본 미군 캠프 케이시 입구. 양쪽 모두 통행증이 없으면 산길을 넘어가야 시내로 나갈 수 있다. 2025.4.18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미군부대와 산으로 둘러싸여 일반 차량의 이동이 어려운 ‘육지 속 섬’ 동두천시 걸산동은 군부대를 통과하는 신규 통행증 발급이 제한된 탓에 직접적인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걸산동 마을 진입로에서 바라본 미군 캠프 케이시 입구. 양쪽 모두 통행증이 없으면 산길을 넘어가야 시내로 나갈 수 있다. 2025.4.18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새로 전입한 사람은 이런 제한적인 통행증조차도 발급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 참다참다 더 참지 못한 주민들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임도를 지나 다다른 마을에서 만난 걸산통장 서재수(79)씨는 “이제 마을을 아예 말살하겠다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2022년 미군이 돌연 신규 전입자에게 통행허가증을 발급할 수 없다고 밝힌 조치가 ‘말살정책’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최근 2가구가 마을로 이사와 전입 신고를 마쳤지만 통행증을 받지 못했다. 서씨는 “한 집은 시내에서 사업을 해서 매일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한다”며 “기지를 통하면 5분 만에 건너는 거리를 위험천만한 임도를 따라 1시간씩 오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의 바람은 길을 내어달라는 것뿐이다. 걸산동 부녀회장 황모(74)씨는 “마을 어르신들의 자녀나 정년 퇴직한 외지인들이 동네로 들어와 살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며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마을에 누가 이사를 오겠느냐. 마을의 씨가 마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마주영·오연근기자 mang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