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YS) 정부 출범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민주계 중진으로
지난 11대 이후 내리 6선을 기록, 한나라당내 최다선 의원이다.

YS 정부 초대 비서실장으로 군부내 하나회 숙정 등 개혁작업을 매끄럽게 이
끌었고 매사를 합리적으로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동아대 재학시 4.19 혁명에 참가한 인연으로 부산중학 1년 선배인 이기택
(李基澤) 전 의원 비서로 정계에 입문, 11대때 정치규제에 묶인 이 전 의원
의 지역구(부산 동래)를 물려받아 민한당 간판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그후 신민당, 통일민주당, 민자당을 거치며 중진 반열에 올랐고, 남북국회
회담대표와 국회 통일특위위원장을 맡는 등 통일.안보분야에서 전문성을 쌓
으며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지난 85년의 12대 총선을 앞두고 양김씨가 신민당을 출범시키자 민한당 탈
당을 주도해 신당 돌풍에 일조했고, 87년 통일민주당 창당때 계파보스인
이 전 의원과 결별하고 YS 진영에 합류했다.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와의 인연은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당시 감사
원장이던 이 후보와의 첫 대면에서 비롯됐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치특보에서 물러난 뒤 문민정부 고위공직자 출신 모임
인 '마포포럼'을 이끌면서 이 후보와 친분을 쌓아 민주계 중 이 후보와 정
서적으로 가장 잘 통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15대 대선 후보 경선당시 사무총장을 맡아 당과 청와대, 당
내 계파 및 중진간 갈등을 무난히 풀어 이 후보의 신임을 얻었고, 그 후에
도 중요한 정치적 고비마다 이 후보 편에 선 덕분에 일찌감치 민주계내 '친
(親) 이회창계'로 분류돼 왔다.

지난해엔 언론자유수호비상대책특위, '선택2002준비위'에 이어 당화합발전
특위 위원장을 맡아 당권.대권 분리, 집단지도체제 도입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대선후보 경선 당시 총재권한대행을 맡아 나름의 조정력을 발휘했다.

민주계이면서도 계파색이 엷어 당내 주류 비주류 모두에 신망을 얻었고, 그
것이 의장직에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YS 퇴임후 상도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처신을 보여 YS로부터 한
때 '신의가 없다'는 비난을 받았고, 김대중(金大中) 정부 출범 직후엔 판문
점 총격 요청사건 개입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바둑을 좋아하고 종교는 천주교. 부인 정순자(鄭順子.59) 여사와 1남1녀.

▲부산(64) ▲동아대 정치학과 ▲청와대 비서실장, 대통령 정치특보 ▲국회
헌법개정기초위원, 통일외무위원장 ▲신한국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부총
재, 총재권한대행 ▲11,12,13,14,15,16대 의원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