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새벽 투신 자살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에는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적지 않다.

사정이 어려워졌다고는 하지만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룹 총수인 정 회장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현실을 일반인 시각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정 회장이 최근 처해있던 상황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렸던 그의 절박한 심리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는 있다. 그는 지난 2000년 3월 '왕자의 난'을 거쳐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 받은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3년여는 한마디로 좌절과 고통, 번민의 연속이었다.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주력사는 그룹 계열사분리로 그의 수중을 떠났고 현대상선 등 일부 회사들만 영향권 안에 남았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처지를 놓고 '껍데기만 가졌다'는 비아냥까지 나돌았다.

정 회장이 생전에 가장 의욕을 보였던 대북 사업 역시 거의 활로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난관에 봉착해 그의 좌절감을 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지난 98년 '분단 50년'의 장벽을 허무는 역사적 사업이라는 평가 속에 출발했지만 작년까지 시설투자비로 1천851억원이 소요된 채 적자만 눈덩이로 불어나 현대아산은 현재 자본금(4천500억원)을 전액 잠식한 상태다.

금강산 관광도 대북 송금의혹과 함께 북핵 문제가 터지면서 200억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이 국회 승인을 받지 못해 현대아산의 자금압박은 더 가중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지난 4월말부터 두달간은 관광 사업이 아예 중단되기도 했다.

'왕자의 난' 이후 소원해진 형제 관계 등으로 이른바 '현대가' 안에서 큰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도 정 회장에게는 큰 심리적 부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 회장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수행중인 대북 사업이 사회적으로 평가절하되는 분위기에 대해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최측근인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도 정 회장의 자살을 '뜻밖'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긴게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대북 송금에 대한 특검 수사에 이어 150억원의 비자금 의혹 사건이 불거져나오면서 평소 내성적이었던 그를 심리적으로 더욱 압박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대검 중수부(검사장 안대희)는 '현대비자금 150억원' 사건 수사와 관련, 정 회장을 7월26일, 31일과 주말인 지난 2일까지 3차례 불러 조사한 것으로 전해져, 검찰이 어떤 혐의점을 놓고 정 회장을 추궁했는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그가 3일 자정이 다된 시간에 회장실에 들어가기 직전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20~30분 정도 있다 내려오겠다'고 말한 점도 되짚어볼 대목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정 회장이 사전에 자살을 결심하고 회장실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회장실에서 모처와의 전화 통화 등을 통해 무언가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들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래 저래 정 회장의 자살 배경은 당분간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