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정 회장이 단순히 일개 기업가가 아니라, 남북경협을 포함해 그동안 남북관계 흐름의 '주역'중 한사람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사망은 큰 파장을 예고한다.
'현대의 5억달러 대북 송금'에서 드러났듯이 그는 지난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부터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착공,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등 3대 경협사업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 진전에 큰 역할을 해왔다.
그의 이같은 왕성한 대북 사업은 '햇볕정책'을 일관되게 견지했던 김대중 대통령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탄력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북핵 사태나 서해교전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됐을 때마다 돌파구를 여는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3년여 동안 약 90회에 이르는 각급 레벨의 남북 당국간 회담이 열린 것을 비롯, 곧 8차 추석 상봉을 바라보는 이산가족 상봉이나 각종 사회문화 교류, 그리고 6억달러를 훌쩍 넘긴 교역규모 등은 그동안 대북 사업에서 '선구자역'을 해온 그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최근 특검 수사와 북핵 위기 등 나라 안팎의 만만치 않은 도전에도 불구,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부친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유지에 따라 3대 경협사업을 나름대로 '뚝심있게' 추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명철 대외정책연구소 연구원은 “현대아산에 의한 대북 경협은 오너인 정몽헌 회장의 뚝심으로 추진돼왔다”며 “이제 그런 뚝심을 가진 사람이 없어져 향후 남북경협 사업이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3대 경협사업의 경우 북한이 현대아산에 광범위한 '특혜'를 주는 등 현대일가와의 각별한 애정과 의리를 바탕으로 남북경협을 추진해왔던 점을 감안하면, 그 추진주체가 사라져 버림에 따라 현대의 대북사업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대북 경협사업의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정 회장의 자살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 및 검찰 수사의 적정성 논란이 재연될 소지가 있고, '단선적인' 대북경협 사업에 대한 회의론도 확산될 소지가 있다.
특히 숨진 정 회장 일가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대했던 평양 당국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하고 조문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남한내 극우 보수층에 의한 '사실상의 타살'로 몰아가며 정치선전 공세에 나설 개연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일시적 차질은 불가피하겠지만 3대 경협사업을 포함한 남북 경협이 제도적으로 추진돼온 만큼 그다지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정세현 통일부장관은 이와 관련,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 등 현대아산이 벌여놓은 여러 가지 남북관계 사업들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남북경협사업에 특별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