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연합고사를 치뤄야 하는 아들의 주민등록초본을 떼려고 동사무소를 찾았던 한 학부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 가족의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당혹스러웠다.
동직원에게 자초지종을 들은후 가장으로서 어린 아들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민망해 무능력한 자신만 한없이 탓하면서 어깨를 떨군채 밤이 늦어서야 지하 단칸방을 찾아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긴긴 한숨만 내쉬며 꼬박 뜬 눈으로 뒤척이고 말았다.
최근 이같은 가장의 모습이 부쩍 늘어나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이들은 다름아닌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몰래 이사를 한 사람들로서 채권 금융기관들이 관할 동사무소에 전가족의 주민등록 말소를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또 이들은 갑작스런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들면 주민등록 조회결과 그런 사람이 없다는 회신으로 영락없는 범법자 취급을 받기 쉽상이다. 그래도 이들은 누구에게도 단 한차례 항의도 못해 보고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은행이나 보험회사 신용카드사 새마을 금고 등 금융기관들이 빚을 받아내기 위한 수법으로 현행 주민등록법을 교묘히 악용,일방적으로 채무자의 주민등록 말소요청을 해 무적(無籍)주민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주민등록이 말소되면 호적은 살아있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 할 정도다. 재산권행사를 위한 인감증명 주민등록등·초본을 발급 받을 수 없고 투표권은 물론 향군법위반으로 처벌 받게 된다. 그야말로 생활속의 불편함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주민등록말소 제도의 당초 입법취지는 주민등록상 거주자와 실제 거주지를 확인 정리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이해관계를 증명만 하면 법인이나 개인 등 제3자 누구나 주민등록 말소를 의뢰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바로 이런 맹점을 IMF이래 금융기관들이나 개인이 마구 남용하면서 읍·면동사무소 마다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주민등록 말소제도의 말소 신청자격을 엄격히 제한해 시민의 불이익을 최소화 하는 한편 인권침해 소지도 큰 만큼 법적 및 제도적 보완이 시급히 요구되는 일이다.
어! 주민등록이 말소돼네
입력 1999-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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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1-0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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