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오는 날,길을 걷다가 스승을 만난 위당 정인보는 그대로 땅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지조있고 고결한 선비로 살다간 위당의 큰 족적을 보여준 유명한 일화다.

스승은 감히 그림자를 밟을 수도 없음을 후대에까지 전해준 위당의 몸가짐이 오늘에도 새롭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을 존경하고 고마움을 새기기 위해 지난 82년에 부활된 이후 열아홉번째 맞는 날이다.

선생님들에게는 더없이 뜻깊고 보람된 하루가 된다. 지금 지구상에는 별도로 스승의 날을 만들어 선생님들의 노고를 기리는 나라는 별로 없다.

오직 우리만이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며 보은의 꽃을 달아드리는 미풍양속을 갖고 있다.

 스승은 스승으로 대접 받아야 한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우리 사회가 방황과 갈등으로 치닫는다 해도 스승의 자리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스승은 곧 우리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승의 날이 되어도 오히려 이 날이 부담스럽다는게 일선 교사들의 반응이다.

즉 학생들이 의무감으로 주는 꽃이나 선물, 기념식 등으로 인해 도무지 마음이 즐겁지 않다는 한 여론조사의 반응이다.

 형식적인 모임보다는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날이 되기를 선생님들은 바라고 있다. 하루 10시간에 달하는 중노동과 같은 일과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교사들은 스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사회는 스승이라는 인격체에 희생만을 강요할 뿐, 그들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고 있다. 한때는 자정바람이 학교에까지 불어와 스승의 날에 고사리손으로 마련한 꽃다발마저 교문에서 되돌려 보내는 촌극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스승의 날의 꽃다발”마저 부정한 눈으로 보려는 세태가 어찌 일선 교사들만의 책임이란 말인가.

교사들이 스승답게 권위를 지키며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사회가 뒷받침해 줘야 한다.

 얼마전부터 교육계가 벌이고있는 “은사찾아드리기 운동”은 스승 공경의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더욱 적극 권장할만 하다.

스승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일깨우는 갖가지 운동은 우리사회의 한 줄기 빛이 되어 무너져가는 윤리-도덕을 되살리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스승이 스승으로서 대접받는 사회에는 갈등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가치의식이 마비-전도된 비뚤어진 사회에선 스승다운 스승이 나타나기도 어렵다.

스승을 스승으로 받드는 사회기풍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위대한 스승을 만드는 사회가 곧 이 시대의 과업임을 오늘만이라도 인식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