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과잉, 불황업종에 대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다고 한다. 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월례 회장단회의에서 석유화학, 철강, 섬유분야 등에 대한 자율구조조정을 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경기가 요즘 날씨처럼 꽁꽁 얼어 붙은 상황에서 일단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전경련이 발표한데로 과연 자율구조조정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작년 8월 30대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장들이 전경련에서 회동, 세계적으로 비교열위에 있는 기업과 과잉중복투자기업 등에 대해 자체평가를 통해 금년 2월까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한 바있다. 또한 작년 12월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작업이 정부주도 아래 재계가 마지못해 끌려간 `반관반민'형태였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작업은 100% 민간형”이라 언급했다. 재계가 자발적(?)으로 약속한 시한인 2월을 한달여 남겨놓은 지금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 또다시 자율구조조정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강제적이든, 업계자율이던 현재까지 진행된 구조조정상황을 보면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98년 9월이래 5대 재벌을 중심으로 착수한 빅딜사업(대규모사업 교환)의 초점은 정유, 반도체, 철도차량, 항공, 선박용 엔진, 발전설비, 석유화학 등 7대 업종이었다. 한화에너지와 LG반도체는 각각 현대정유와 현대전자에 흡수통합되었고 선박용 엔진과 발전설비는 한국중공업 중심으로 통합되었다. 한화석유화학과 대림산업이 에틸렌부문을 분리, 별도로 합작법인(YNCC)을 설립하였다. 항공과 철도차량도 5대 재벌로부터 분리, 각각 별도의 통합법인을 설립하였다. 한편 빅딜에서 제외된 수많은 기업들이 작년 11월3일 `부실기업 퇴출' 조치로 기업구조조정작업은 외형상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구조조정 타령을 운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확실한 개혁청사진 부재와 일관성 없는 정책과 실기(失機), 그리고 재벌들의 시간 벌기 전략이 부합한 결과이다. 즉,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구조조정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번 전경련의 발표는 “경제살리기에 최우선 역점을 두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 화답하려는 듯이 비쳐 또 한번의 `시간 벌기'식의 제스처는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